광해군에 대한 관심이 높다. 지난 2012년 이병헌 주연의 영화 <광해-왕이 된 남자>가 상영된 이후 작년에는 선조와 광해군의 갈등을 다룬 KBS 드라마 <왕의 얼굴>이 방영됐고, 요즘은 KBS <징비록>, MBC <화정>에서 광해가 비중 있게 다뤄진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선조는 국가적 위기에서 제 살길만 찾는 한심스러운 왕으로, 광해군은 백성의 고통을 어루만지며 조선을 전란의 위기에서 구하고자 몸을 던지는 영웅적 리더로 그려진다. 지난 세기까지 우리 머릿속에 각인된 광해군의 이미지와는 상반된 것이다.

  ‘역사는 현재와의 대화’라는 E.H 카의 말은 광해군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부침을 설명할 때 딱 들어맞는다.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난 이후 조선시대 내내 광해군은 어머니를 폐하고 동생을 죽인 ‘폐모살제’의 패륜아이자 조선을 전란에서 구한 명나라의 은혜를 저버린 혼군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도 명청 교체기란 격변기에 중립을 지킨 탁월한 외교정책가로 평가된다. 지난 2000년 명지대 교수 한명기는 <광해군 :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를 통해 광해군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바꿔냈다. 한명기 교수는 이 책에서 미·중·일·러 열강에 둘러싸인 현재의 외교적 국면을 헤치고 나갈 소중한 역사적 거울로 광해군을 재평가했다. 임진왜란 당시 중국으로의 망명까지 고려하며 의주로 도망친 선조 대신 분조(分朝)를 이끌고 함경도와 평안도, 그리고 황해도 등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민심을 다독이는 한편 의병 모집과 군수물자 조달 등을 책임지며 전장의 한복판에서 활약했던 점 역시 재발견됐다. 광해군에게 비판적인 오항녕 교수는 <위험한 거울, 광해군>에서 광해군이 지나치게 고평가됐다고 ‘힘들게’ 얘기할 정도로 광해군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대세다.
  그렇다고 광해군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광해군을 ‘대중화’한 한명기 교수 역시 광해군에 대해 ‘내치에는 실패하고 외교에는 성공한 군주’라고 정리했다. 필자 역시 이러한 평가에 대체로 수긍한다. 대륙에 이는 변화의 바람에 촉각을 곤두세워 변화를 감지했다. 명의 군사적, 외교적 지원 요청을 최소 수준에서 들어주고, 신흥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후금에 국서를 보냄으로써 긴장관계를 해소했다. 신료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보낸 외교상의 결단이었다.
  그러나 내치에는 완전히 실패했다. 광해군은 김류·이귀 등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으로 폐위됐다. 지지세력인 이이첨 등의 대북파의 강경드라이브를 제어하지 못하고 각종 옥사를 일으킨 것이 반정을 초래한 것이었다. 소수파인 집권 대북파는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영창대군을 유배시킨 뒤 살해한 계축옥사와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를 유폐시키는 무리수를 둠으로써 가뜩이나 좁은 지지기반을 축소했다. 게다가 실력자 이이첨은 광해군의 외교 정책에 대놓고 반기를 들었다. 권력 기반을 다지지 못한 소수파 정권의 비애이자 소수의 기반세력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빈곤한 정치력의 광해군의 비극이었다.
  그런데 이런 광해군이 요즘 들어와 부쩍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전쟁이란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도망치기 급급했던 선조의 모습에서 현재의 권력자를 떠올리기 때문은 아닐까?그와 반대로 전쟁터에서 민중과 고락을 함께하며 전란을 극복하기 위해 헌신하는 광해군 같은 리더에 대한 갈망 때문이 아닐까?광해군을 몰아낸 인조와 서인 집권세력은 유연한 전략적 안목 속의 외교적 대응이 아니라 경직된 명분만 내세우다 민중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이런 자들의 외교정책과 현 정권의 외교 정책이 오버랩되면서 그 대안에 대한 갈망 때문일까? 광해군과 긴장관계에 있던 선조, 적대관계였던 인조와 그 집권세력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절망과 분노 때문에라도 광해군 드라마와 영화가 오늘 주목받는 것은 아닐까? 
  더 나아가 우리는 광해군의 패배와 좌절이 오늘 다시 반복되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소망 때문에 역사적 실체보다는 더 과장되고 이상화된 광해군을 그리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나날이 답답해지는 지금, 여기다.  
   
 최용범 역사전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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