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 시절을 우리는 ‘청춘’이라고 부른다. 누군가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목표도 뚜렷해서 바쁜 나날을 보내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아직 무엇을 할지 한창 고민할 시기이기도 하다. 흔히 사람들은 전자의 경우를 올바른 삶이라고 말하곤 한다. 언제인지 모를 순간부터 우리는 그 기준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더 나은 방향을 향해 좇아가기만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실패와 좌절을 반복하며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위로해 주고자 등을 토닥여주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려 내면서 그동안의 설움을 씻어낸다. 물론, 필자 또한 그러한 경험을 가지고서 지금까지 지내왔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어떠한 경험의 결과가 아닌 성장의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좌절하기에는 앞으로 주어질 기회가 너무나 많다. 우리는 커다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릴 준비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쥐고 있는 연필이 원하는 방향으로 그림을 그려낼 수도 있지만 가끔은 어떤 그림을 그릴지 생각조차 해내지 못할 때도 있으며, 연필을 도화지에 갖다 대는 그 중요한 시점에 주위의 환경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게 되어 정작 애초에 꿈꾸던 그림과 다른 방향으로 그려질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그림이 결코 틀린 그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스케치한 그림을 채색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수정할 수도 있을 것이며,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그려지더라도 자신을 만족시키는 그림의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오늘날 교육의 현주소를 나타낸 말 중에 “눈이 녹으면 어떻게 되죠?”라는 질문에 “물이 돼요”만 정답이고 “봄이 와요”는 틀린 답이 돼버렸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경쟁 사회의 압박 속에 무엇이 옳은지도 모른 채 정답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선택의 연속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나아가고 있다. 서로 다른 경험을 하며, 다양한 생각을 쌓아가며 세상을 살아가는 구성원의 일부로서 자신의 역할을 책임지고 있다. 우리는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는 존재이다.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고, 다양한 생각을 공유하기도 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갖춰 가고 있다. 청춘이 아름다운 이유는 자신만의 삶을 ‘책임’이라는 전제하에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옳다는 기준은 없다. 뚜렷한 목표가 정해지지 않아도 좋다. 다만 조금 더 현재의 삶에 대해 당당해진다는 것 자체가 충분히 멋진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후회를 한다거나 예상치 못한 아픔을 겪어 내야만 할 수도 있고, 기대했던 바를 이루어 낼 수도 있는가 하면, 새로운 목표가 생길 수도 있다.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질책받기에는 너무나도 소중한 순간들이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내디디고 있다. 이겨 내야 할 현실적 문제들이 너무나 많고, 견뎌 내야 할 외부의 압박을 무시할 수 없을지라도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청춘인 것이다. 끊임없이 도전하며 세상과 소통할 자신만의 창을 넓혀가길 기대한다. 이 시대의 청춘들이여, 힘을 내자! 

   
 서진아(생명과학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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