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인 기자 <국어국문 13>

  “한반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 보니…”

  오밤중에 잠에서 깨면 아무리 목이 말라도 좀처럼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물을 뜨러 가기엔 몸이 무겁고, 참자니 갈증이 심하다. 그 때를 위해 자기 전 머리맡에 두는 물이 ‘자리끼’다. 나는 누군가에게 자리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항상 그 자리에 있으면서 도움의 손길을 건넬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 지 고민을 했었다. 
  그러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사고 현장을 중계하는 뉴스를 보게 됐다. 울음바다가 된 팽목항 사이를 무분별하게 누비는 기자들. ‘저들은 무엇 때문에 남의 슬픔을 헤집고 다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종을 위해 유가족들에게 무자비한 질문 세례를 내리꽂는 기자들도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들 때문에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오히려 기자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들을 반면교사 삼아 유가족들에게 상처주지 않고 사실만을 알리는 기사를 써보고 싶었다. 결심은 더욱 굳어져 지난해 9월 <부대신문>에 입사하게 됐다. 4개월 뒤 나는 <부대신문>에서 사회부 기자가 되어 다양한 취재원들을 만났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와 형제복지원 피해자, 세월호 사고 유가족도 취재했다.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한 채 점점 잊혀지는 이들을 다시 비추는 것이 뿌듯했다. 
  하지만 뿌듯함과 동시에 마음 한 켠에 불편함도 커졌다. 내 스포트라이트에 비춰진 그들이 생각보다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가 되기 전에는 ‘피해자’였던 사람들이 지금은 ‘취재원’으로 바뀌었다. 날이 갈수록 불편함은 점점 커져 ‘혹시 내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줬던 그 기자들처럼 행동하고 있지는 않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취재원들을 향한 내 질문들이 그들의 상처를 바늘로 쑤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그 고민은 기사를 쓸 때까지도 나를 괴롭혔다. 물어보지 못한 그 질문 때문에 기사에 무언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취재원들의 감정이 우선일까, 기사의 완성도가 우선일까? 고민은 아직 끝나지 않은 채 어느새 정기자가 됐다. 나에게서 ‘수습’이라는 글자를 떨쳐내려니 고민의 깊이나 양에서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정기자로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아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돼야 겠다는 결심은 잊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리끼가 되려고 한다. 항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옆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제 역할을 다하고, 그들의 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기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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