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잘 몰라서 미안해요. 오늘 처음 택시 운전대를 잡은 날이거든요”
  지난 2일 새벽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아저씨의 진심어린 사과를 듣자 피곤한 기운이 싹 사라졌다. 그 전날 택시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을 취재하고 온 터라 많은 생각이 들었다. 50대 중반은 족히 돼 보이는 기사 아저씨. 어떤 사연이 있길래 이제야 택시를 시작하신 걸까. 이 분도 어제 만났던 택시 노조원들이 겪었던 아픔을 겪겠구나 하는 생각에 먹먹해졌다.
  택시 사업장만큼 정경유착이 뿌리 깊은 곳도 없다. 택시 사업체인 한남교통 사장은 전 경찰서장 출신이고 해동택시의 사장 역시 경찰 출신이었다. 택시노조 변재승 부산지회장에 따르면 경찰들끼리의 사담으로 ‘그래도 우리 선밴데…’라는 말이 오갈 정도라고 한다. 변재승 지회장과 농성 기간동안 많이 다퉜던 부산시 교통국장은 택시사업조합 전무가 됐고, 대중교통과 택시계장은 지난해 두리발 택시의 본부장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런데 택시 사업주들, 장애물이 없다고 막 나가는 정도가 좀 심하다. 지난 1998년부터 조세특례제한법이 제정돼 사업주들의 세금이 감면되고 있다. 노동자들은 감면된 만큼 임금이 높아질 것을 기대했다. 그런데 사업주들은 그 돈을 최저임금에 산입했고 하루 근로시간을 줄여 기존 임금액은 감소시켰다. 결국 총 임금은 최저시급 이상으로 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사업주들은 감면액을 노동자들에게 지불했다며 뻔뻔하게 주장하고 있다. 사업주들을 처벌할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 대법원은 감면액을 임금에 포함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냈지만 정작 처벌 주체인 시청과 고용노동청은 본체만체하고 있다.
  지난해 부산시 서병수 시장은 부산지역 택시를 3,000대 가량 감소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택시 과잉공급으로 인한 불친절과 운송적자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취지는 좋지만 택시를 세금으로 매입하는 방법에는 문제가 있었다. 변재승 지회장은 “애초에 무상으로 공급한 택시를 사업주들에게 다시 돈 주고 사겠다는 것이야말로 유착관계의 증거가 아니겠냐”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택시 기사들은 사업주에게 불만이 있어도 해고를 당할까봐 함부로 덤빌 수 없었다. 사업 현장에서는 사업주가 택시 기사를 괴롭힐 수 있는 수단이 넘쳐났다. 차 수리를 잘 해주지 않는 것도 그 중 하나다. 택시노조 이삼형 지부장은 타이어가 다 닳아 사측에게 수리를 요구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밖에도 연차 휴가 수당을 주지 않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니 택시 기사들은 언제나 을(乙)일 수밖에 없다. 근로 조건은 갈수록 악화되고 수입조차 늘지 않으니 택시업계를 떠나는 사람도 많다.
  지상에서 발 빠르게 쏘다니던 택시 노동자들이 기동력을 잃고 고공농성 중이다. 사업자들은 노동자들에게 뻔한 꼼수를 부리고 있다. 좀 더 치밀하지 못한 그들이 바보인건지, 아니면 노동자들을 바보로 알아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지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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