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린이집 교사들의 아동학대와 관련한 사건들이 이슈가 되었다. 많은 학부모들이 보육·교육시설을 이용하는 데 대해 불안과 걱정을 토로하고 교육이 바로서지 못한 점을 한탄하는 기사도 여러 번 접했다. 사실 교육 현장에서 학습자를 존중하지 않거나 부도덕한 행위를 일삼는 교수자에 관한 기사는 특정 시기에 집중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대중매체의 보급과 함께 적지 않게 거론되었고, 인터넷과 모바일 SNS 기능이 보급·확산되면서부터 이처럼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사회적으로 부도덕하다는 평가를 내릴만한 사안은 그 내용이 더 부각되는 것 같다. 

  대학과 관련해 매년 신학기가 되면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것은 신입생 환영과 관련한 좋지 않은 술자리 문화와 대학교수들의 성추행 관련 기사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이런 기사들이 오히려 진리를 추구하고 젊은 열정을 불태우는 대학의 학습 문화와 인간 존재로서 서로 존중하고 함께 연구하는 사제 간의 정을 짓밟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맹모삼천지교는 교육적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예다.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자연스레 물드는 법이다. 사회의 부도덕한 면과 추한 것만을 들추어 부각시킬 때 학교는 보호를 받고 좋은 친구와 선생님을 만나며 진리를 탐구하는 곳에서 멀어져 조심하고 피해야 할 곳으로 변화된다. 물론, 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묵인하고 간과하자는 뜻은 추호도 없다. 강조하고픈 바는 좋은 생각과 행위, 문화 등을 더 많이 부각시키고 알려서 학교를, 사회를 더 좋은 곳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좋고 아름다운 것에 물들 수 있도록 생각을 전환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나는 좋은 선생님을 참 많이 만났다. 가정형편이 염려되어 학급임원은 감히 도전할 수 없다는 내게 “임원은 네가 하지 부모님이 하는 것이 아니야”라며 용기를 심어주시고 도전하게 해 주신 선생님, 알파벳도 모르고 중학교에 진학했는데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의 성장을 칭찬하고 격려해주셨던 영어 선생님, 사교육의 도움 없이 논술 시험을 혼자 준비해야 했던 내게 신문 논술 대회에 도전하라는 핑계로 매주 글을 적어 와 점검을 받으라며 어린 자존심을 지켜주고 지도해주셨던 국어 선생님 등, 떠올리면 가슴 뭉클하고 감사한 분들이 그 예다. 
  우리학교도 좋은 선생님을 많이 만난 곳이다. 나의 지도 교수님께서는 대학원 공부가 너무 힘들다고 의논을 드리면 한결같이 “그러면 내가 뭘 도와주면 좋을까요?” 하시며 교수는 학생이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 또 얼마 전 학내에서 있었던 인문학 관련 강의를 진심으로 열심히 준비하셨던 타과 교수님으로부터 학점이나 취업과 관련하지 않은 강의임에도 관심을 가지고 참여한 학생들에 감동했고 보람을 느낀다는 말씀도 함께 들을 수 있었는데, 나에게 더 큰 감동은 교수님께서 본인이 부산대학에 교수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학생들의 존재 때문이라며 감사하는 마음을 보여주셨던 것이다. 
  부산대학교에는 이런 교수님들이 비단 이 두 분만 계시진 않을 것이다. 부도덕하고 추한 내용들을 알려 조심하고 예방하는 일 못지않게 바람직하고 따뜻한, 그리고 본보기가 되는 내용들이 확산되어 부산대학을 더욱 좋은 환경으로 만들면 좋겠다. 벚꽃이 거리를 하얗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부산대학을 물들이고, 다시 그 물듦이 우리 사회에, 우리나라에 옮겨지면 참 좋겠다. 
 권정선(교육학 박사 15)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