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전당이라고 하는 대학의 주인은 누구인가? 학문의 주체인 교수와 학생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학교 구조조정을 비롯한 주요정책이 교육부와 언론사의 평가지표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 주인이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대학은 대학 밖의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한 방책마련에는 고심하지만 교육과 연구라는 대학의 본질적인 역할을 어떻게 제고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진지하게 할 여유가 없는 성싶다.
  교육부가 취업률을 대학평가의 중요지표로 삼으니 대학은 학생 취업률에 바짝 신경을 쓰고 있고, 교육부 장관까지 나서서 취업률이 낮은 단과대학은 구조조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하였다. 취업이 삶의 절실한 문제이지만, 학문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의 학습권도 존중받아야 한다. 정부나 기업이 해결해야할 문제를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에 책임을 전가하고, 경제논리만 횡행하는 이 폭력적인 사태가 심히 우려스럽다. 기초학문을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다’는 비학문적인 이유로 퇴출시키려거든, 대학을 대학이라 부르지 말고 취업전문학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명실상부해야 하지 않겠는가!
  중앙대학교를 인수한 박용성 회장은 ‘대학이 더 이상 학문하는 곳이 아니며,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배출해야 한다’고 하면서, 대학을 기업논리로 운영하여 대학 구성원들의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문제이므로 대학교육이 기업환경변화에 부응하는 현장 중심 교육으로 가야 하는 것도 일견 맞다. 그러나 대학이 기업의 직업훈련소처럼 운영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대학의 구조조정을 보면서 문득 일제의 교육정책이 떠오른다. 일제는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한하고 초보적인 기술과 실업교육을 위주로 하였다. 이는 식민지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식민지배에 순종하는 한국인을 만들기 위한 조치였다. 일본의 식민지배는 군사적 경제적 침략에 국한되지 않고 ‘조센징’이란 열등한 자기의식을 심어줌으로써 주체적인 삶을 불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자본만이 삶의 유일한 잣대가 되어 대학이 당장 기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눈앞의 기술’만을 가르친다면, 직능인은 길러낼 수 있지만 미래를 짊어질 지식인을 양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와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연구와 교육이 어려울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 또한 분명하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국립대학은 사회적 공공제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저소득층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기초학문 분야의 후속세대를 양성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 또한 식민주의와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인문학적 성찰 역시 시급한 학문적 과제라고 하겠다. 우리학교도 대학이 처한 현실적 어려움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초학문의 보호 육성과 학문의 다양성 확보를 위한 대책 마련이 구조조정과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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