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큰 사람 덕을 봐도, 나무는 큰 나무 덕을 못 본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자신보다 큰 사람의 관심과 보호 속에서 빠르게 성장할 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나무는 큰 나무의 그늘 밑에 있으면 빛을 제대로 받지 못해 생존하기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은 나무라고 끝까지 작은 것만은 아니다. 큰 나무를 베어 그늘을 제거하면, 작은 나무들은 숨통을 틔우고 다시 하늘을 향해 쑥쑥 자란다.

  생태계의 모든 생물들은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면서 살아간다. 자원을 확보한—먹잇감을 충분히 확보한— 개체는 원활한 영양 공급으로 덩치가 커지고, 커진 덩치는 그 자체로 다른 경쟁자와 천적을 물리치는 요소가 된다. 따라서 충분한 먹잇감만 확보할 수 있다면 개체의 진화는 덩치가 커지는 쪽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전략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 바로 공룡이다. 티라노사우르스는 길이 13m, 무게 6톤의 거대한 사냥꾼이었고, 슈퍼사우루스는 길이만 42m에 55톤의 무게를 지닌 그야말로 산더미 같은 생물체로 자라났다.
  하지만 모든 개체가 이 전략을 이용할 수는 없다. 이미 덩치 큰 경쟁자들이 우위를 선점하고 있거나 덩치 경쟁에서 밀려난 개체들은 오히려 덩치가 작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대표적인 예가 초기의 포유류다. 원시 포유류인 시노그나투스는 공룡과 비슷한 2억 2천 5백만 년 전에 지구상에 등장했고 크기도 여우만 했다. 하지만 공룡이 생태계 제왕으로 군림하면서 1억 8천만년 경 지구상에 남은 포유류는 쥐 정도의 크기로 줄어든다. 쥐 크기의 포유류가 몸집을 불릴 기회를 잡은 것은 6천5백만 년 경, 공룡이 멸종된 이후였다. 큰 나무가 베어지면 작은 나무들이 경쟁하며 자라나듯, 공룡이 멸종해 무주공산이 된 생태계에서 이들이 다시 신흥강자로 떠오른 것이다. 이들 몸속에서 수천만 년 동안이나 잠자고 있던 ‘크기에 대한 열망’은 매머드(무게 9톤)와 마스토톤(무게 6톤)으로 이어졌고 심지어 쥐의 조상 중 하나인 포베로미스 패터르소니도 길이 2.5m, 무게 700kg에 달하는 거대한 덩치로 자라났다. 포유류는 곧 그들 사이에서 새로운 덩치 경쟁을 이어나갔다. 코끼리나 코뿔소 등 개체는 점점 덩치를 키워 생존의 유리한 지점을 선점했고, 이 틈바구니에 끼인 설치류는 천적의 눈에 덜 띠는 형태로 작아지는 전략을 구사하면서 이들 종간 개체 차이는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의 쥐가 작다고 해서 미래의 쥐도 작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쥐가 작아진 것은 환경과 맞물린 적응의 결과이지 쥐는 무조건 작아야 한다는 숙명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대형 포유류의 상당수가 멸종 위기에 처해있는 현실은 오히려 쥐에게 있어서는 예전의 영광을 되찾는 기회의 발판일 수도 있다. 영국 얀 잘라시에비치 교수는 고립된 생태계에서는 쥐가 생태계 주요 위치를 차지하고 이에 따른 보상 급부로 대형화가 이루어질 것이라 주장한다. 쥐는 생후 30일이면 성적 성숙이 일어나며 임신 3주 만에 6~12마리의 새끼를 한꺼번에 낳을 수 있고, 출산 후 21일이면 다시 임신이 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번식력을 가진다. 이 엄청난 번식력은 쥐를 잡아먹고 사는 천적들에게 풍부한 먹잇감이 되는 동시에, 천적이 없는 경우 쥐가 생태계의 우위를 독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렇게 된다면 과거 공룡이 사라진 자리를 차지한 포유류들이 자체 경쟁을 벌여 대형화되었듯, 천적이 사라진 생태계에서 쥐들끼리의 경쟁을 통해 거인증을 가진 쥐가 출현할 가능성 역시 매우 높다. 잘라시에비치 교수는 고립된 생태계, 즉 외따로 떨어져 오랫동안 독자적 생태계를 이루었던 작은 섬에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이와 함께 들어온 쥐들이 기존의 생태 균형을 깨뜨리고 새로운 지배자가 된 사례, 즉 ‘쥐의 섬’에 대한 사례를 다수 제시했다. 또한 최근 영국, 스웨덴 등에서 길이 40cm가 넘는 거대 쥐가 출몰하는 일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과연 지구 생태계의 미래는 마이티마우스(Minghty mouse)가 지배하는 쥐들의 천국이 될 것인가? 정확한 답은 먼 훗날이나 답할 수 있을 테지만, 지금처럼 대형 포유류의 멸종이 가속화된다면 그에 비례해 이 가능성이 더 커질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궁금증이 하나 피어오른다. 점점 크게, 혹은 점점 작게 변해가는 생물종의 경쟁 속에서 인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거인이 되어 있을까, 아니면 생존을 위해 큰 체구를 벗어버린 모습일까.
이은희 과학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