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훈 (원예생명과학) 교수

   최근 재미있게 본 영화는 단연 <인터스텔라>였다. 실제 우주를 보는듯한 스펙터클한 SF영상과 시공을 넘나드는 스토리 구성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영화에서는 머지않은 미래에 점차 악화되는 기후와 지구환경 때문에 재배 가능한 식물이 하루하루 줄어들고, 엄청난 규모의 병충해로 밀, 옥수수와 같은 주요 작물이 멸종되기 시작한다. 식량 부족으로 교육, 산업 등 사회체계는 온통 농업 중심으로 변화한다. 이즈음, 전직 우주비행사인 한 농부가 NASA의 요청으로 사람이 살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을 찾기 위해 가족을 남겨두고 목숨을 건 우주탐사를 떠난다.

  실제로 지금처럼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가 계속된다면 오는 2080년에는 지구상 동식물종이 지닌 유전자 다양성이 84%나 사라진다고 한다. <네이처>지의 기후변화저널(Nature Climate Change) 최근호는 ‘지구적 기후변화에 연결된 은성 생물다양성 손실’이라는 논문을 소개하며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동식물종이 환경변화에 적응(다윈의 적자생존)하려면 유전자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데 그 원동력이 ‘은성’이다. 은성이란 유전자 내에 숨겨진 정보로 인해 뚜렷한 특징이 나타나지 않으면서도 유전과 진화에 영향을 끼치는 현상을 가리킨다. 유전자 내에 숨겨진 은성 다양성이 보존된다면 지금은 동일한 종으로 분류되는 개체들도 오랜 시간을 통해 진화를 거듭해 별도의 종으로 분화될 수 있다. 그러나 논문은 ‘기후변화로 인해 대부분의 혈통은 분화가 완성되기도 전에 사라질 것’이라며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유전체(게놈) 내에서 ‘진화적으로 의미 있는 단위’를 ESU(Evolutionary Significant Unit)라 하는데, ESU를 기후변화 모델에 적용시키면 2080년까지 현재의 ESU 중에서 84%가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소한의 탄소배출 상황을 적용해도 손실률은 59%에 달했다. 연구를 이끈 카스텐 노박 연구원은 생물 다양성을 “현재로 고정된 형태가 아닌 진화를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적인 상태”라 규정하며 “특정 유전자 계통이 사라지거나 은성 다양성이 감소하는 것을 막아야만 미래 동식물종이 입게 될 거대한 손실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시 영화 <인터스텔라>로 돌아가서, 우주비행사가 죽음을 불사한 탐험을 하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것은 지구에 남겨 둔 어린 딸을 다시 만나겠다는 의지였다. 탐험을 떠난 거창한 이유는 인류구원이었지만, 사실은 딸의 행복한 삶을 지켜주고 아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었다. 결국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딸은 천체물리학에 몰두하게 되고, ‘블랙홀’을 통해 보내온 아빠의 메시지를 해석해내면서 마침내 우주 미아가 될 뻔 한 아버지와 인류의 운명을 함께 구하게 된다.
  영화를 보며 느낀 것인데, 인간능력의 진화에 있어서는 다윈의 ‘적자생존 진화론’이나 ESU와 같은 ‘은성 다양성’만이 적용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대신 세대를 이어 계속되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처절한(?) 사랑과 기대­­­… 이것이 인류문명을 이만큼 진화시켜온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부모의 사랑과 기대로 자식들은 지성과 감성에서 끝없이 진화한다. <인터스텔라> 영화포스터에 이러한 글귀가 적혀있다.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그러니, 기후변화니 식량위기니 하는 것에 너무 안절부절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그 대신 부모님이 우리에게 거는 기대를 생각하며 오늘도 강의실에서 열심히 지성을 길러내자. 그러면 답을 찾을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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