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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라는 투명인간
  • 오선영 소설가
  • 승인 2015.02.28 21:35
  • 호수 1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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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보이지 않게 된다면?’이란 상상은 예로부터 이어져 왔다. 전래동화 속 주인공은 ‘도깨비감투’를 쓰고 자신을 괴롭히던 악당을 무찌르고, 곤궁에 빠진 이들을 도왔다. 끝내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도적질을 일삼는 인물이 되었지만 ‘도깨비감투’ 자체는 매력적인 존재로 많은 이들의 뇌리에 남았다. 서구의 공상과학소설에는 과학문명의 발달로 투명인간이 되는 과학자가 나온다. 할리우드 SF영화의 단골 캐릭터 중에도 투명인간이 있다. 

  그런 점에서 미루어보면 성석제의 장편소설 <투명인간>(창비, 2014)은 새롭지도, 참신하지도 않다. 더욱이 그의 소설에선 ‘도깨비감투’나 ‘과학자의 실험실’, 투명인간이 되기 위한 ‘마법주문’도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인물은 특별한 장치 없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투명인간이 되어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소설은 주인공 ‘만수’의 삶을 연대별로 따라가며 그가 투명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추적해 나간다. <투명인간>에는 석수와 백수, 금희와 옥희, 명희, 아버지와 할아버지 등 대략 30명의 화자가 나온다. 이들은 개개의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사연을 이야기 한다. 그와 동시에 주인공이지만 화자가 아닌 ‘만수’에 대해서도 함께 진술한다. 소설은 퍼즐조각을 맞추는 것처럼 각각의 인물이 내놓은 사연들을 모아 ‘만수’라는 전체 그림을 구성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아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죽는 건 절대 쉽지 않다. 사는 게 훨씬 쉽다. 나는 한 번도 내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내게는 아직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니까. 그 사람들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지지하고 지켜줘야 한다”(P.365)
  ‘88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와 국가의 부국강병을 위해 ‘여당’만을 계속 찍어왔다는 ‘만수’의 모습은 여러 면에서 영화 <국제시장>의 ‘덕수’(황정민 분)를 연상하게 한다. 매혈을 하고 베트남 파병을 가며, 동생들을 위해 학업을 포기할 뿐 아니라 파독광부가 되어 철없는 동생들과 별난 어머니를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은 여러 부분에서 닮았다. 이러한 이유는 그들이 한국 현대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국가 이데올로기와 가족주의에 충실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 일생을 살았던 두 사람의 마지막은 확연히 달랐다. 죽도록 고생한 덕수가 장성한 아들, 딸과 손자, 손녀까지 거느리고 부산 앞바다가 보이는 양옥주택에서 여유롭게 생을 반추할 때, 투명인간이 된 만수는 차가운 마포대교 위에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국제시장>이 덕수를 통해 지난한 시간을 보낸 윗세대에게 박수와 위로, 찬사를 보낸다면, <투명인간>은 만수를 통해 열심히 살았음에도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될 수밖에 없었던 인물들을 조명한다. 이는 만수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 오늘날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이들에게 해당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더 크다. 20대를 가리키는 88만원 세대, 삼포 세대, 이태백 등의 용어들은 투명인간의 또 다른 버전인 것이다. 
  투명인간은 스스로 투명해짐으로써, 되레 제가 그곳에 존재했음을 드러낸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야 스스로가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것처럼 투명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통해 그동안 은폐되어 왔고 억압되어 왔던 많은 것들을 수면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투명인간이 되기 전에, 그 사람의 빛깔과 질감과 체온과 목소리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성석제의 <투명인간>을 읽고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지금도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투명인간에 대해서, 언젠가 투명인간이 될 내 자신에 대해서. 투명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에 대해서. 답을 알 수 없기에 더 두려워지는 오후이다.
 
   
오선영 소설가

 

오선영 소설가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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