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부터 먹고 해요” 입에 담배를 물고, 예민한 눈빛으로 쏘아보는 예술인들의 모습을 상상했던 기자가 처음 들었던 말이다. 중앙동에 위치한 극단 새벽 사무실에 들어서자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풍겨왔다. 단원들은 모두 한 곳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자리에 아무 거리낌 없이 기자를 불러 앉혔다. 이것이 극단 새벽의 모습이다. 이러한 극단을 30여 년 간 지켜온 인물이 바로 이성민 상임연출가다. 부산 문화인으로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성민 연출가를 만나 우리네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시종일관 차분하게 인터뷰에 임했지만, 부산 문화계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극단의 연출가가 하는 일이 어디까지인지 범위를 예상하기 어렵다. 연출가의 역할에 대해 설명해 달라

  연출은 일반적으로 작품을 무대화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을 해요. 공연이 가능하도록 하는 일을 하는 거죠. 연출가마다 견해들이 다르니까 연출의 역할이 어디까지라고 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방송으로 치면 피디고 영화로 치면 감독 같은 거죠. 어떤 연출은 작품을 정하는 것까지 관여하죠.

  나는 주로 작품을 쓰죠. 극작 겸 연출을 하니까 어떤 작품을 무대화할 건지 고민을 하죠. 단원 회의를 통해 소재가 잡히면 글을 쓰는 작업을 하고, 배우들을 캐스팅해서 작업을 시작해요. 기획이나 제작을 제외한 나머지 업무를 웬만하면 다 하는 것 같아요.

 

△연극을 처음 시작한 것이 고등학생 때라고 들었다. 연극인의 삶을 살게 된 계기가 있나

  학교 다닐 때 연극한 걸 연극 시작했다고 할 수가 있나. 실제로는 극단을 창단한 뒤를 실질적인 연극 작업의 시기로 봐야죠. 그게 한 30년 됐네요. 어릴 때는 연기를 했는데 배우보다 연출이 좋아서 연출가가 됐어요. 애초에는 연극이 내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전업 연극 할 자신은 없으니까 낮에 일하고 밤에 연극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생활했죠. 얼마동안은 구로공단에서 일을 했어요. 그런데 이 회사가 이상한 거예요. 정상적인 노동 조건이 아니야. 싸움박질 하다가 해고되고, 해고됐는데 자꾸 대드니까 수배도 되어서 부산에 있는 집에 도망 온 거죠. 그런데 좀이 쑤셔서 죽겠는 거라. 그래서‘ 가스등’이라는 자그만 카페의 목요초대석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연극을 같이 해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모이더라고요. 어느 정도 바탕을 만들어주고 나는 나가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오히려 진하게 엮이고 내가 책임져야 될게 많아졌어요. 처음에는 내가 운영하다가 창단 10주년이 될 때는 극단 전체 공동 자산으로 생활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현재 단원들이 함께 살아가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죠.

 

△창단 30주년을 맞았다. 창단 당시 극단새벽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이었으며, 지금은 그 가치가 잘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하나

  새벽은‘ 삶과 연극이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으로 만들어졌어요. 삶이 아무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는데 다양한 문제가 있잖아요. 주로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일어나는 여러 사회적인 의제들을 다뤘어요.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괴리되지 않은 연극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연극운동의 측면에서는 소극장 운동하고 있어요. 소극장 운동은 처음에 리얼리즘 연극이라는 연극운동이 진행되면서 이를 실험하면서 시작됐는데, 이후에 대극장 중심의 상업주의 연극을 극복하기 위한 운동으로 이어졌어요. 최근에는 독립연극 운동, 인디 연극 등으로 발전하게 됐죠. 모든 소극장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기준으로 하는 건 아니고 새벽이 주로 고민했던 것이 독립 연극운동, 그리고 상업주의연극의 대안으로서 소극장 운동이에요.

  마지막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연극을 통한 문화 운동이에요. 사람들이 문화생활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문화를 예술적인 것으로 자꾸 축소시켜서 말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본래 문화는 삶의 양식 전체를 말하는 거예요. 예술운동과 문화운동은 엄밀히 말하면 구분되는 거죠. 문화운동은 삶의 방식을 바꾸는 운동이라서 범주가 훨씬 넓어요. 이 문화라는 것을 지탱하는 세 개의 축이 교육, 언론, 예술이거든요. 각각 교육·언론·예술 운동으로 독자적 형태가 존재할 수 있듯이 문화운동이라는 것은 이 세 축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이에요.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단어 중 하나가‘ 대안’이다. 문화의 세 축인 교육, 언론, 예술에도 각각‘ 대안’이라는 단어를 붙어서 말하기도 하고, 대안문화라는 단어가 독자적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아마 상대적인 개념일 거예요. 기존의 것에서 극복해야할 것이 있으니까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있을 때 대안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 같아요. 대안문화라는 말은 우리도 많이 써요. 새벽이 참여하는 모임도 대안문화연대에요.

  지금의 문화는 모두 자본의 논리로 형성되어 있고, 사람의 관계도 시장을 통해 전부 이뤄지잖아요.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대량 생산하고, 끊임없이 소비를 충동질 하죠. 집에 가서 보세요. 옷장을 열면 한 두어 번 입고 안 입는 옷이 수두룩하거든요. 집에서 사용하는 물건들 중에도 잘 쓰지 않는 물건들이 많아요. 그러한 소비중심의 문화, 그리고 생존을 위해서 끊임없이 경쟁하는 문화가 사실은 정상적인 문화는 아닌 거죠.

  99%와 1%라는 표현을 많이 쓰잖아요. 1%의 소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으로 99% 사람들이 사는 거라. 그런데 그건 자신들에게 맞는 생각이 아니에요. 단순하게 말하면, 자기도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라. 부자가 왜 되어야 하는 건지 난 모르겠어요. 경쟁하고, 엘리트 직업군에 들어가려고 애를 쓰고. 대학에서는 이런 표현 많이 써요‘. 대한민국 역사 상 이 정도로 좋은 스펙을 쌓는 젊은이들이 있었을까?’ 대학생들은 스펙 쌓기를 거부할 줄 몰라요. 주류 사회에 편입되려고 아득바득 애를 쓰기 때문이죠. 사실 그건 주류 사회가 아니에요. 본래 주류는 다수가 선택하는 삶의 형태에요. 그런데 스스로가 자꾸 1%가 하는 이야기를 자기 마인드로 삼는 거예요. 바보지. 그건 세상에 순응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논리의 노예가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대안문화는 현재의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 운동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말인가

  예를 들어 보죠. 나는 왜 등수 경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가치 경쟁이 더 의미가 있을 텐데. 10명이 달리기를 하면 각자 체력이 다른니까 1등부터 10등까지 나오는 건 당연하죠. 꼴찌하는 건 문제가 아니에요. 그 사람 달리기는 못해도 다른 건 잘하는 게 있을거라고.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받아들여주지 않으면 사람들이 그러한 마인드를 네트워킹해서 다수의 삶으로 소통하고 형성하려고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걸 못하는 거라.

  운동이라는 게 먼 곳에 있는 게 아니에요. 살고 있는 삶의 환경을 바꾸어 나가는 건데, 절대 혼자 못해요. 혼자하는 것은 도덕 운동이죠. 한꺼번에 바뀌기는 힘들지만 지속적으로 네트워킹 해야 되요. 소통하며 범주를 넓혀가고 흐름을 조금씩 키워나가는 거죠.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려면‘ 내가 얼마나 도덕적으로 살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세속화되어있는 자본의 논리를 벗어나서 다르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된다고봐요. 이것으로 우리가 사는 환경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어요.

 

△창단 30주년 기념극‘새야 매야’는 동학농민운동이 주제다. 동학을 주제로 한 연극을 작품으로 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극단 레파토리이기도 하고, 창단 30주년이 되는 올해 마침 갑오 농민항쟁120주년이니까 선택했어요. 문제의식을 느끼는 거죠. 1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시대도 봉건제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바뀌었는데 민초들이 사는 건 똑같은 거예요. 관료가 썩었고,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 마음대로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다른 게 없잖아. 갑오년에‘ 도저히 이런 식으로는 살 수 없다’고 봉기했던 농민들이 당대 처해졌던 상황과 오늘 우리가 처해진 삶의 형태가 얼마나 차이가 있나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장 세월호만 보더라도 그래요. 국가가 국민의 생명에 대해서 저렇게 무심할 수 있는가. 또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여기가 안전하지가 못해요. 매일 지하철 타고 다니는데 갑자기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근본적으로 이런 것을 가장 최소화시킬 수 있도록 국민들 스스로 애를 쓰고, 세월호가 하나의 계기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세월호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일베(일간베스트)’라는 애들은 비상식적인 행동을 해요. 이건 병증이에요.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정서적으로 소통하지 않는 의식구도.

 

△‘새야 매야’는 몸짓극이다. 작품에 대사가 없는 이유가 있나

  가만히 생각해보라는 뜻이야. 말로 막 주거니 받거니 대사를 좇아가는 연극이 아니에요. 비언어연극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거든요. 예를 들면 여섯 명의 아이들이 나오면서 극을 열어요. 대단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고 계속 무대에서 노는 모습을 보여주죠. 이 애들은 과거가 현실로 드러나게 하는 역할을 해요. 사회는 결국 아이들의 미래에요. 무언가 잘못된 것을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 당장 사람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부분도 있겠지만 더 멀리 보는 거예요. 현재 바뀌지 않으면 미래가 암담한 거죠.

 

△최근 대중들에게 호응을 얻는 다양한 작품을 보며 어떠한 생각을 하나

  잘 모르겠어요. 요즘 작품을 하면서 참 공허할 때가 있어요. 영화 <명량>이 히트를 쳤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래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박수치고 감탄하고 끝이더라고요. 현실에서 느끼는 분노를 그런 식으로 배설을 하는거라.

  세상에 문제가 나타나면 해석하는 건 누구나 해요. 싸웠을 때 누가 잘했고 못했고 보이니까요. 그런데“ 그래, 저게 잘못됐잖아”라고 위안 받고 끝나는 것이 무슨 소용이에요. 영화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위안 받는 자세를 지적하는 거예요. 요즘 하도 힐링이 유행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네. 힐링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전에는 피로감이 생기면 그것을 극복하려고 다른 방식을 찾았어요. 누군가 나를 힐링해주고 위로해주기 바라는 것은 또 하나의 함정이거든요. 힘들 때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어요. 자꾸 위로받기만 하다보면 위로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요. 위로 받고 싶을 때 고개를 조금만 돌려서‘ 나만큼 위로받아야 할 사람이 많구나’라고 인식해야 되는 거예요. 시대가 다르니까 이해 못하는 부분이 있겠지만 해결방식으로서의 답은 아니다 라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내가 왜 이렇게 살지’가 아니라‘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돼’‘, 사람이 왜 이렇게 살아야 돼’에요. 자아가 없으면 죽으니까 에고는 중요한 거죠. 그런데 자꾸 에고이스트가 되고 있어요. 자아주의에 몰입되는 거.

 

△부산에서는 특히 우리학교 주변이 심각한 연극 불모지인 것 같은데, 대학로는 본래‘ 연극로’라고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문화 공간이 많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건 대학로가 만들어질 때 수도권에서 그러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정책적으로 애를 썼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부산시는 할 마음이 없잖아요. 어느 지역이든 문화예술 관련 사업을 하려면 시에서 무엇부터 해야 되겠습니까. 거기 있는 건물주들을 불러서“ 느그들 이런데 소극장이나 전시장이든 유치를 하면 세금을 어느 정도 깎아줄게, 이걸 좀 유치해라” 그러면 이 사람들이“ 어? 괜찮겠네?” 해야 진행이 되는 거예요. 연극인들 중에 스스로 소극장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주머니 사정이 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요. 부산이 예술 공간을 못 만드는 이유가 이거에요. 그나마 있는 소극장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잖아요. 그야말로 이건 시 행정 차원에서 고민을 하지 않으면 해결이 안 돼요. 부산국제영화제 하잖아요? 이름만 부산국제영화제지, 부산영화제 아니에요. 부산국제영화제를 하려면 부산에서 자급하는 부산 영화인들을 키워야 되는데 안 하잖아.

 

△영화나 기타 공연과 다르게 연극만이 가지고 있고 연극만이 전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연극의 매력은‘ 생방송’이라는 거예요. 영화와의 결정적인 차이가 이거에요. 영화는 결과의 예술이거든요. 결과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관객이 보는데, 연극은 그럴 수가 없어. 연극은‘ 요시땅’ 시작하면 과정이고 뭐고 무조건 끝까지 해야 돼. 이것이 주는 치열한 긴장감이 주는 매력이 있어요. 그리고 연극은 복제가 안 돼요.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한 공연을 한 달간 하더라도 매일 다를 수밖에 없어. 영화는 최종적으로 영상으로 만들어지고 나면 고대로 상영이 되고 복제가 가능하잖아. 마지막으로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거든요.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 영화는 감독이 그림을 만드는데 연극은 배우가 만들어요.

  연극은 매우 전투적이고 치열해요‘. 어름산’이라고 하죠. 무대 위에 서는 연기자들은 남사당놀이패가 외줄 위에 서서 줄 타는 거하고 똑같아요. 무대에 올라 집중을 유지하고 끊임없이 긴장해야 돼요. 조금도 졸아서는 안되고. 그 역동성이 나한테는 큰 매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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