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의 한쪽 벽면은 저마다 하나의 인생을 담고 있는 22편의 시와 8점의 사진으로 채워져 있다. 바쁘게 오가던 사람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춰 시나 그림들을 음미하고 간다. 천천히 전시된 작품들을 하나하나 읽어보는 모습도 보인다. 이곳은 바로 노숙인 문화예술작품 기획전이 열리고 있는 물만골역 인권전시관이다. 부대신문에서 노숙인 문화예술작품 기획전의 모습을 담고 작품을 만든 노숙인들을 직접 찾아가 보았다.

 

 

  “맞은편 가정집의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뽀오얀 불빛은 더 할 수 없이 따사롭고 평화롭게 보입니다. 저곳에서 잠시나마 추위에 지친 몸 늬울 수 있다면 구수한 된장찌개 끓여 하얀 쌀밥 한술 할 수 있다면” 

-서상훈‘ 거리에서’ 중에서

  지난 4일부터 30일까지 3호선 물만골역에서 노숙인 문화예술작품 기획전이 열린다. 이번 행사는 △금정희망의집 △부산동구 쪽방상담소 △부산진구쪽방상담소에서 재활 활동을 하는 노숙인들의 예술작품을 전시한 것이다. 이번 행사는 국가인권위원회 부산인권사무소에서 부산문화재단에 노숙인 작품 전시전을 제안해 이루어졌다. 부산문화재단 문화복지팀 이민경씨는 “노숙인 복지사업이 진행되면서 노숙인들이 예술을 접할 기회가 많아져 예술에 대한 의지와 관심도도 높아지고 있다. 노숙인에 대한 편견해소와 인식 개선을 위해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인생을 바꾼 ‘나의 시’

상담소 및 기관에서 재활활동을 받고 있는 노숙인들은 부산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예술동아리에서 꾸준히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행사에‘ 거리에서’, ‘내 인생 내 지게에 지고’ 등 총 8편의 시를 출품한 서상훈 씨와 ‘몸’, ‘달’ 등 2편의 시를 출품한 김원석 씨 역시 예술동아리를 통해 예술을 접했다.

서상훈 씨는 시가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때가 소주 한잔 했던 때였는데, ‘엄마’ 이 두 자를 쓰니까 더 이상 쓸 수가 없는 거라. 울고 싶어서”라고 말하며 처음 시를 썼던 때를 회상했다. 시는 그의 마음속에 있는 울분을 밖으로 꺼내주는 창구가 되었다. 그는 “술 말고 다른 욕구가 생긴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며 “시를 쓰고 나면 술 먹는 것 이상으로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했다. 또 그는“ 시를 쓰고 난 후 삶에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다”며 시를 통해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지금은 재기에 성공해 어엿한 직장을 가지고 있는 김원석 씨 역시 작품 활동으로 힘을 얻었다. 그는 “내 작품을 부산 시민들이 봐준다고 생각하면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뿌듯하다”며 “시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몰라도, 솔직한 내 마음을 담은 것이므로 스스로 인정한다”고 말했다. 몇 번의 사업 실패 끝에 좌절감을 맛본 그는 지금 새로운 희망을 찾고 있다. 그는 새로 구한 직장인 숯불고기 집에서 자신이 쓴 시를 액자에 걸어 전시하려 한다며 “내일부터 또 시를 쓸 것”이라고 말했다.

   
▲노숙인 문화예술 작품전에 참가한 김원석(왼쪽) 씨와 서상훈(오른쪽) 씨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노숙인의 작품전을 보는 시선

시민들은 이번 행사를 통해 노숙인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회를 가졌다. 작품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던 김종길(연제구, 66) 씨는 “마음에 닿는 작품들이 많다. 이곳의 사진과 시들을 보면 이 사람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랑주(연산동, 64) 씨는 “어떻게 보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인데, 이들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을 수 있다”며 “편견 없이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행사의 취지는 좋지만 관심도가 너무 낮다는 지적도 있었다. 근무처 때문에 평소 자주 물만골역을 지나다니는 오동익(개금동, 22) 씨는“ 평소에 전시관이 항상 비어있으니까 습관적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다”며 “언뜻 봐서는 어떤 작품전인지 내용을 알 수 없으니 그냥 지나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인권사무소 인권전시관 코디네이터 장새봄씨는“ 특정 단체나 학생들이 견학차 관람 오는 경우는 꽤 있지만 평소에 관람하는 일반 시민들은 많이 없는 편”이라며 관심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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