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준모형과 힉스 입자

 세상 만물의 근원에 대한 질문은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면서도 순환하는 자연을 보면서, 보이는 것보다 더 근원적인 것이 그 이면에 존재할 것이라는 막연한 질문은 인간의 생각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동력이 되었다. 직관적인 신앙에서 출발한 종교가 그러하고, 이성적 인간을 발달시켜온 모든 학문이 그러하다. 동양의 음양오행설을 비롯하여, 서양의 4대 원소론 등 수많은 근원적 물질에 대한 사색과 탐구는 마침내 근대과학에 이르러 물질들의 현상들을 발현시키는 기본원소들을 추출하고 많은 화합물들의 합성을 가능케 하였다. 결국 만물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작은 입자들의 결합으로 설명되고 있는데, 그 쪼갤 수 없는 작은 입자는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 것일까?

 
더 이상 쪼갤 수 없는작은 입자, ατομον
초등학교 때‘ 자연’이라는 과목을 처음 배우던 시기를 돌이켜보면 과학은 물체를 분리(分)하고 쪼개는(析) 데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모래와 철가루는 자석을 이용해 분리할 수 있고, 소금은 물을 증발시켜 추출해내며, 물에 전극을 가하면 산소와 수소가 된다. 화합물은 가장 작은 입자인 분자(Molecule)로 이루어져 있으며, 분자를 더 분해하게 되면 화합물은 원래의 성질을 잃고 더 작은 단위의 입자인 원자(atom)들로 쪼개진다. 사실 이 원자를 뜻하는 atom이란 말은 고대 희랍의 ‘더 이상 쪼갤 수 없는(ατομον)’에서 따온 것으로, 실제로 상당히 오랜 기간 원자는 궁극적인 기본입자로 여겨졌다. 이후 원자도 끝이 아니라 그 내부에 더 작은 기본입자인 전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J.J.톰슨), 원자의 내부 구조에 대해 많은 이론과 실험들은 마침내 현대물리학의 시대를 열었다. 어떤 원자들이 어떤 조건에서 얼마나 많은 전자들을 포획 혹은 방출하여 이온이 되는지에 대한 수많은 결과들로부터 원소 주기율표가 완성되었다. 전기적으로 중성인 원자 내에 음전하의 전자가 있다면 반드시 양전하도 존재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마침내 E.러더퍼드에 의해 원자핵(nucleus)이 실험적으로 발견되었다. 하지만 우린 이쯤에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쪼개지지 않는 궁극적인 점과 같은 입자를 찾았다고 해도, 기술이 발달하고 실험이 고도화될수록 언젠가는 또 쪼개지지 말란 법이 있을까? 그래서 결국 이 쪼개지지 않는 가장 작은 입자를 찾는 일은 그 자체로 끝이 없는 일이 아닐까?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이 있다. 이때까지 근원적 입자를 찾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나누고 쪼개기만 했던 것이 원자와 전자를 찾기까지의 방법이었다면, 러더퍼드는 원자핵을 발견하기 위해서‘ 알파선 산란실험’이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의‘ 보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즉, 그 내부구조를 알기 위해서 쪼개서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굉장히 무거운 양전하의 알파입자(=헬륨원자핵)를 원자에 충돌시켜 산란된 결과를 분석한 것이었다. 전자가 골고루 박혀있는 푸딩 정도의 원자라면 당연히 거의 그대로 전부 통과해버릴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아주 가끔씩 대단히 큰 각도로 반사되어 돌아오는 알파입자가 관측된 것이다. 이때, 러더퍼드가“ 이것은 마치 휴짓조각에 15인치나 되는 대포알을 쏘았는데, (아주 가끔이지만) 그 대포알이 튕겨나와서 나를 가격하는 경우만큼이나 믿기 힘든 일이다”고 얘기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이후 쪼개지지 않는 궁극의 점과 같은 입자를 찾으려는 연구 방법은 완전히 달라진다.
   
 
현재 고에너지 가속기에서 수행되고 있는 최첨단‘ 입자충돌실험’도 원리적으로는 이와 동일하다. 입자와 입자가‘ 부딪힌다’는 것은 실제로는 그림에서 보듯이 반발력의영역에 들어와서 각도가 크게 꺾이는 것을 의미한다. 러더퍼드의 알파입자 산란실험에서 실제로 커다란 각도로 튕겨나온 알파입자로부터 우리는 원자 중심에 있는 ‘무엇’인가가 대단히 무거우며, 또 양전하를 띠고 있고, 그 크기가 점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로써 원자핵이 궁극의 가장 작은 입자로 여겨지면서, 입자충돌 장치인 가속기를 이용한 충돌실험과 이론이 본격적으로 발전하였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충돌실험을 통해 발견한 입자들
충돌실험과 이론이 획기적인 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생겼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이때 충돌로부터 산란·생성된 입자들의 분포를 예측하는 모델링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러더퍼드도 원자핵을 양전하를 띤 무거운 점입자라고 가정하고 전자기적인 반발력에 의해 산란된 알파입자의 분포를 계산했으며, 그것이 실험결과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그의 모델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가속기를 이용한 본격적인 고에너지 입자의 충돌실험이 계속되면서, 원자핵도 점이 아니라 특정한 공간분포를 가지고 있다는 것,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가 아주 작은 공간에 결합된 형태라는 것, 나아가 여러 개의 양성자가 아주 좁은 거리에서도 전자기적으로 반발하지 않도록 단단하게 결합시키는 강한 핵력(강력)의 존재까지 밝혀지게 되었다. 또한, 양성자에 전기적 반발력을 훨씬 넘어서는 아주 높은 에너지의 입자를 충돌시키면, 양성자가 부서지면서 무수히 많은 여러 종류의 소립자들이 만들어졌는데, 이 소립자들의 생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보다 더 근원적인 기본입자로서 쿼크가 제안되었다. 이후 이 쿼크 모델에 의해 예측된 소립자들의 발견이 잇따르면서 쿼크의 존재는 확실시 되었고, 쿼크는 마침내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내부구조를 갖지 않는) 궁극의 기본입자로 입증되었다.
 
또한, 마찬가지로 입자 충돌실험을 통해서 원래의 입자와 물리적인 성질은 완전히 갖지만 반대 스핀 때문에 반대 전하를 띤 반입자가 발견된 것은 대단히 극적인 일이었다. 모든 입자들에 대해 그에 상응하는 반입자들이 존재한다. 마치 소설 같은 이야기이지만, 입자와 반입자가 쌍으로 만나면 소멸되어 순수한 에너지인 빛의 형태로 바뀌고(쌍소멸), 역으로 순수에너지는 입자와 반입자의 쌍으로 생겨나기도 한다(쌍생성). 우리가 우주의 탄생으로 알고 있는 대폭발 혹은 빅뱅이론도 엄청난 에너지가 쌍생성을 통해 입자와 반입자로 바뀌는 현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기본입자를 찾기 위한 이같이 긴 여정에서 밝혀졌듯이, 원래부터 (시)공간이란 개념은 물질 간에 작용하는 상호작용과 깊은 연관이 있다. 충돌그림에서 보듯이, 실제로 그 물체가 점유하고 있는 공간이란 꽉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물체와 상호작용하는 한계공간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상호작용 외에는 빈 공간만 가정해야하므로, 서로(아무런 매개물 없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에 주목한다. 마찰이 없는 빙판에서 서로 공을 주고받으면 서로 반발력이 작용하는 것처럼 관측되듯이, 현재까지 자연계에 알려진 4가지의 기본 힘(중력, 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에 대해서도 상호 교환되는 힘입자가 존재한다. 결론적으로 표준모형은 궁극의 기본입자들인 6개의 경입자와 6개 종류의 쿼크들이 이 세상의 삼라만상을 구성하고 있으며, 힘을 중개하는 힘입자들이 이들을 상호 결합·작용시키고 있다는 모형이다.
   
 
 
힉스 입자
궁극적으로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기본입자들과 힘을 중개하는 힘입자들이 왜 각각 다른 질량을 갖고 있을까. 상호작용을 근거로 시공간을 새롭게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물질의 고유한 양인 질량도 주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갖게 된 효과’라고 생각한다면, 바로 이러한‘ 질량효과’를 가능하게 하는 입자를 힉스 입자라고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완전히 매끄러운 바닥에서라면 어떤 물체를 굴려도 그 질량효과를 느낄 수 없겠지만, 갯벌과 같이 진흙이 가득 찬 바닥에서라면 입자의 종류에 따라 질량효과는 확실히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공간이지만, 힉스 입자에 기인한상호작용의 결과, 물체가 진공에서도 서로 다른 질량효과를 나타낼 것이라는 게 바로 우주 만물에 대한 표준모형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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