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45일째(5월 31일 기준), 우리는 모두 피해자가 됐다. 언론이 보여주는 화면에는 참사 현장만이 가득했고 국민들은 ‘구경꾼’ 입장이 됐다. 각종 추측성 보도가 쏟아지면서 의혹이 증폭됐지만 우리는 정확한 상황을 바라볼 수 없었다. 언론이 비추는 현장을 바라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언론은 비극의 현장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며 재난을 증폭하고 확대했을 뿐이었다. 공공성을 내세우며 언론의 자율성을 부르짖던 언론사들은 정파적 보도를 쏟아냈다. 피해자 추모와 사건 책임 규명을 요구하며 촛불을 든 시민들에게 ‘세월호 촛불 집단의 가망 없는 반정부 선동’이라는 굴레가 씌워졌다. 반면 대통령의 눈물에는 각종 미사여구가 동원되며 의미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방송통신발전기본법’에 따라 국가 재난방송 주관방송사로 지정된 KBS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KBS 김시곤 보도국장은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와 비교해 거센 비난 여론을 맞고 사퇴했다. 여파는 KBS 길환영 사장에게까지 번졌다. 김시곤 보도국장이 청와대 외압설을 폭로 한 것이다. 그는 길환영 사장이 세월호 사건 등 KBS 보도 본부의 보도를 통제했으며 KBS에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청와대 박준우 정무수석이 세월호 피해자 가족과의 면담 이후 김시곤 보도국장의 사의에 대해 “KBS에 최대한 노력을 해줄 것을 부탁”했다는 발언을 하면서 의혹은 증폭됐다. 결국 KBS 기자들은 제작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지난달 29일부터는 길환영 사장 퇴진, 청와대의 보도 통제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KBS 양대 노조(KBS노동조합,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가 총파업에 돌입했다. 결국 KBS는 국가재난방송 주관방송사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했음은 물론 ‘언론’으로서의 역할마저도 수행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로 남 은 것은 독립성을 잃은 우리 언론의 민낯과 그런 언론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뿐이다.

사실 KBS의 보도 독립성에 대한 의문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KBS 사장 선임 방식에서 비롯된 우려다. 표면적으로 KBS 사장의 임명권한은 KBS 이사회에 있지만, 이사회의 구성은 여당·대통령 추천 7명과 야당 추천 4명으로 이루어진다. 사실상 정권의 지배 구조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언론 구조 속에 내재돼있던 낡은 문제점들이 단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만천하에 알려졌을 뿐이다. 진정으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신뢰성을 잃을 수밖에 없는 언론의 보도행태 뿐만이 아니라, 언론의 독립성 침해 문제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당시 벌어진 언론통폐합에서부터 이명박 정권 당시 낙하산 인사에 반발한 KBS, MBC, YTN 기자 해직 사건까지. 우리는 지적만 했을 뿐 변화하려 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우리 사회의 밑바닥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제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언론과 언론 구조의 변화를 요구하는 동시에 우리 스스로가 변화해야 한다. 시청자, 구독자들 또한 선정주의에 이끌릴 것이 아니라 ‘진정한 언론’이 만드는 뉴스를 찾아 소비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변화는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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