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추운 겨울날이었지. 지난 1973년 1월 즈음 고향에 간 김에 졸업 논문을 준비할 겸 자료를 수집하러 산책을 나갔어요. 정말 우연히 발견했어. 지나는 곳이 산복도로였는데, 가만히 보니 구멍이 하나 있더라고요. 손을 집어넣으니까 쑥 하고 들어가는 거예요. 알고 보니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이 오줌도 누고 그랬던 구멍이더라고(웃음). 그 구멍 속에서 발견한 것이 치밀골과 갯섬조직으로 이뤄진 공룡 앞다리뼈 화석이었어”

우리나라 최초의 공룡화석이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대형 공룡 용각류의 상박골(앞다리뼈)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견한 김항묵(지질환경과학) 명예교수는 한반도를 세계적인 공룡대국의 반석 위에 올려놓은 장본인이다. 특히 부산·경남지역을 세계적인 공룡유적지로 끌어올렸다. 최근 그는 지난 3월, 2010년 1월 부산 사하구 감천항 입구 두도에서 출토한 화석 중 일부가 8,000만 년 전 백악기 시대의 공룡 유골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발굴작업 때문에 출타한 것이 아니라면 불이 꺼지는 날이 없다는 그의 연구실에서, 우리나라 자연사학의 현황과 공룡연구자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두도 비탈사면 해안가의 화석 중 일부가 공룡 유골인 것으로 확인됐다

처음에는 모두들 조류 화석인 줄 알았다. 그 런데 고척추동물 및 고인류학 연구소(IBPP) 의 연구 결과 공룡뼈 화석임이 밝혀져 시타 고사우르스(앵무새룡)라고 추정하기 시작했 다. 그런데 불필요한 돌을 긁어내는‘ 클리 닝’ 과정에서 이 화석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백악기 시대의 초식공룡인 오로라세 라톱스 또는 아채세라톱스의 골격 구조와 동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클리닝 작업 이 계속 진행되고 있으며, 전시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러한 유골 발견이 어떤 학술적 의미가 있나

본래 공룡의 몸체는 온전하게 다 발굴되기 어렵다. 썩어서 없어지거나 깎여버리는 경 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도에서 발견 된 이번 화석은 60~70%의 발굴율을 기록했 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화석 중 최종 발굴율이 가장 높다. 또한 우리나라에 서 발견된 뼈 화석 중 최소형 공룡이라는 점 도 주목할 만하다. 보통 공룡이라고 하면 대 형 공룡만을 생각하기 쉬운데, 이번에 발굴 된 공룡은 오리 또는 고양이만한 크기다.

△공룡 화석의 발굴과정을 간략히 설명한다면

발자국 화석이 비교적 잘 발견되는 편이다. 각 생물마다 고유의 발자국이 있기 때문에 발자국 모양의 차이를 통해 어떠한 생물의 발자국인지 파악한다. 발바닥 뼈 구조와 발 자국을 비교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뼈 화석 은 일반적으로 돌 속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돌과 뼈를 함께 운반하는 것이 중 요하다. 이후 뼈 화석으로부터 불필요한 돌 을 발라내는 클리닝 작업을 진행한다. 온전 히 뼈만 남도록 복원하는 과정이다. (연구실 안 뼈 화석 가리키며) 모든 복원과정을 거친 저런 대퇴골 뼈 하나가 20억씩 한다(웃음). 말 그대로 인류 전체의 자산이다.

공룡을 연구하는 자들은 필수적인 자료가 새와 관련된 것이다. 새는‘ 살아있는 공룡’ 이라 불린다. 학자들은 진화적으로 공룡이 진화한 형태가 현재의 새로 정착했다고 보 고 있다. 공룡의 다음 단계가 새라고 보는 것 이다. 새의 대퇴골과 비교하면 공룡의 크기 와 종류를 예측할 수 있다. 실제 연구도 새와 비교하며 진행된다.

‘자연역사 부문의 발견왕’. 김항묵 교수를 지칭하는 또 하나의 이름이다. 그는 지금까 지 300여 차례 공룡관련 화석을 발굴했고, 약 5,000여 개의 뼈 화석을 발견했다. 지난 1999년, 공룡유적 보존의 법칙을 세계적으 로 발표해 한반도 동남부 경상도 지역과 전 라남도 해안 지역이 세계 최대 공룡유적지 임을 입증해 내기도 했다. 그의 연구실에 자 리하고 있는 빼곡한 자료들이 이러한 열정 을 드러내주는 듯 했다.

△지질학을 선택해 공부하게 된 특별한 계 기가 있나

고등학교 재학 당시 이웃집에 지구과학 선 생이 살았다. 함께 등하교를 하며 은연중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그 분이“ 지질학 을 공부하면 국가적으로 크게 기여할 수 있 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 큰 동기부여가 됐 다. 당시 지질학은 학문적으로 많이 발달하 지 못한 상태였고, 연구하는 사람도 드물었 다. 이러한 빈자리에 박차고 들어가 매워나 가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부산과 관련 없는 곳에서 학창시절을 보 냈으나 부산대 교수로 재직하고, 명예교수 까지 됐다

부산으로 연구지를 옮긴 것은 공룡 발굴 작 업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였다. 서울이나 수도권 지역에서는 활발한 발굴 활동을 하 지 못했을 것이다. 유적 분포지 자체가 좁기 때문이다. 대학생일 때만 해도 부산에 공룡 화석이 전무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 함안, 진주 정도만 발굴지로 생각했는데, 부산 주 변 일산일대를 돌아다니니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지질학적으로 경남·부산 지역은 어떤 가 치가 있나

경남·부산 지역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 두 공룡층이다. 우리나라에서‘ 공룡’하면 경남·부산 지역인 것이다. 올해 진행된 발 굴 작업 이전에도 두도에서는 다양한 골룡 알, 뼈, 발자국 등이 발견돼‘ 보물창고’라고 불린다. 두도에서 300~4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남공원에서도 다양한 화석이 발견 되고 있다. 암남공원 일대에서 우역혈청제 조소(혈청소)로 이어지는 지층을 다대포층 이라고 하는데, 약 8,000만 년 전 형성된 이 지층은 지질학적으로 가치가 높다. 공룡이 살던 시기와 지금의 환경은 매우 차 이가 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남·부산 지역에서 금이나 석탄 등의 지하자원이 많 이 발견되지 않아‘ 쓸모없는 땅’이라는 오 명을 뒤집어썼었다. 그러나 최근 경남·부 산 지역에서 자연사 유물·유적·유체 화석 처럼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자원이 대량 으로 발견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지 하자원이다. 이를 이용하면 경남·부산 지 역을 전세계적인 관광지로 발전시킬 수 있 다고 생각한다.

△직접 개발한‘ 공룡유적보존의 법칙’은 무 엇인가

공룡이 이주하거나 떠나지 않은 한 기존에 서식하던 퇴적 분지의 매 지층마다 공룡 유 적이 존재한다는 법칙이다. 하나의 공룡화 석이 발견이 됐으면 해당 지역의 모든 지층 에 공룡 유적이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경 상남·북도 퇴적함 지층(경상계)에서 직접 발굴한 결과를 바탕으로 법칙을 만들었다.

김항묵 교수는 지난 2009년 정년 후 공룡 학과 자연사학을 정립하는데 정열을 쏟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정확한 목표는‘ 공룡 학’을 포유류학, 파충류학처럼 하나의 분류 학으로 정착시키고, 자연사학을 역사학처럼 하나의 학문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는 줄곧 자연사학 발전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나, 우 리나라에서는 자연사학에 대한 연구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단 적인 예로, 우리나라에는 국가대표급 자연 사박물관이 없다. 자연사 박물관의 건립에 대해 다시 묻자‘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고 개를 젓는다.

△자연사학을 발달시키는 것이 왜 중요한가

자연사학은 자연의 역사를 공부하는 학문 이다. 인간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은‘ 역사 학’이고 활발히 연구되고 있으나 자연과학 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은 없다. 인간 지구 에 등장하기 이전에 다른 생명체가 살던 시 절이 있었고, 그 배경을 조사하는 것이 인류 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다. 과거 생물과의 비교를 통해 현생생물의 특징을 파악이 가 능하기 때문이다.

△많은 과거 생명체 중 공룡에 대한 연구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나

자연사를 연구하는 이유와 유사하다. 현생 생물과의 비교가 가능한 가장 중요한 생물 중 하나가 공룡이다. 공룡화석을 살펴보면, 공룡 중에서도 뼈가 돌출되는 등 비정상적 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있다. 당시에도 질병 을 앓는 공룡이 있었다는 말이다‘. 골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 공룡 뼈는 현재 인간 뼈와 큰 차이가 없다. 공룡 뼈 발굴이 활발해지고, 더 나아가 공룡을 복원해내는 것이 가능해 진다면 인간의 삶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뼈의 내부가 손상되지 않은 공룡 뼈 발현이 가능해지면 생명의 근원을 밝히 는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멸종 하지 않는 지혜 또한 얻을 수 있다.

△공룡의 멸종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 견이 분분하다. 어떠한 학설을 지지하나

공룡은 멸종 원인에 대한 수십 가지 학설이 존재한다. 세계적으로 지지를 얻고 있는 학 설은‘ 전지구화재설’이다. 공룡이 생존하던 시기 직경 4km에 이르는 소행성이 지구와 빈번하게 충돌했는데, 그 충돌열이 1만 8,000도씨 이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충돌 열이 화재를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충돌할 때 지구에는 큰 웅덩이가 파였는데 이때 발 생한 흙먼지는 열운(熱雲)을 형성하고 전 지 구를 돌며 화재를 일으켰다. 불바다로 변한 지구에서 살아있는 생물은 불에 타 절멸해 버린 것이다. 지질학적 근거가 존재하기 때 문에 가장 유력한 학설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촬영을 위해 우리학교 지구관에 위치 한‘ 지질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해 6월 개관한 지질 박물관은 500점 이상의 화석과 광물이 전시돼있다. 시종일관 차분 하고 느긋한 말투로 인터뷰에 응하던 김항 묵 교수의 행동이 사뭇 달라지는 순간이었 다. 전시된 화석에 대해 설명할 때는 마치 뒤 에 있는 화석이 김항묵 교수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는 듯,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개교기념일과 우리학교의 역사에 대한 우 리학교 구성원들의 인식이 저조한 것 같다’ 는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한참을 고민하던 김항묵 교수는 역시나 자연사학과 관련된 답변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이 자리에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과거를 알면 현재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현재를 알아야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자연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수많은 변화 의 흐름을 파악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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