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의 침몰로 우리 사회의 문제가 드러나면서 사건의 책임을 누가 져야 할 것인가에 관한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렇게 말들이 많아도 책임자를 찾아내 책임을 묻는 일은 결국 복잡한 수사와 긴 재판을 거칠 것이다. 그리고 수사와 재판을 거치는 동안 이 비통하고 막중한 책임의 무게는 쪼개지고 갈라져 사소하고 일상적인 여럿의 책임이 될 것이다. 법대로 선장과 선원과 선주와 해경과 감독관청과 안전검사업체 등을 처벌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자고 다짐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이 가벼워진 사소함으로 이렇게 무겁고 비통한 상처가 위로받을 수 있을까?

이 엄청난 사건의 책임이 법조문을 거치며 여럿의 책임이 되어가는 동안 우리는 책임자 없는 구조현장의 무능을 다시 경험하게 될 것이다. 법대로 당사자들을 처벌한다 해도 아까운 생명들이 물에 잠기는 위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관료주의의 무능과 세월호가 침몰의 위험을 적재한채 출발하게 한 공직자와 기업 간의 유착이 사라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이란 나약한 개인들이 생명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시민들이 모아준 힘이다. 그것이 비상시에 국가 최고 통치자가 전권을 가지고 시민들의 생명을 지키는데 맨 앞에 서야하는 이유다. 그리고 전권을 가진 최고통치자가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야 국가는 지도자의 의지에 따라 평시에는 위기를 대비하고, 비상시에는 강력한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세 말 영국과 프랑스는 백년전쟁이라고 부르는 긴 전쟁을 했다. 영국 왕의 군대가 프랑스로 진격해와 프랑스 국토는 쑥밭이 됐다. 급기야 1356년 전투에 나갔던 프랑스 왕은 적에게 잡혀 포로가 되고 말았다. 왕을 데려올 몸값이 필요했던 왕세자는 귀족들과 상인대표를 불러 국난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파리의 시민들과 농민들은 분노했다. 주민들의 안전을 지켜야 할 왕과 귀족의 무능력과 태만을 비난했다. 자신들의 기득권만 지키려 했을 뿐 직분을 게을리했다는 것이다. 파리시의 대표로 궁정회의에 참석했던 에티엔 마르셀은 시민들의 원성을 전하고 국왕과 정부에게 책임을 물었다. 그리고 무능하고 부패한 고위 관리의 파면과 시민대표의 국정 참여 권한을 요구하며 무력시위를 이끌었다. 이후 마르셀은 일 년여 파리의 국정을 장악했다. 물론 반란자 마르셀은 피살되고, 그의 거사는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파리 시청 옆에 청동 기마상으로 서 있는 마르셀을 만날 수 있다. 프랑스인들이 마르셀을 숭고한 시민혁명의 선구자로 복권시킨 덕분이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국왕에게 책임을 물은 마르셀을 진정한 시민의 지도자로 추대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권력이 국민에 대한 책임이라는 생각은 사라지고 권력자들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권리로 여겨진지 오래다. 관료화된 국가는 국민들이 모아준 권력을 부처별로 쪼개 큰 위기를 상대해야 하는 순간엔 무력하고, 서로 책임을 떠넘겨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를 만들었다.

분명한 것은 국가의 첫 번째 존재 이유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며, 국민의 생명이 위기를 맞는 순간 모든 책임을 지고 지휘해야 하는 사람은 최고통치자라는 것이다. 국민의 운명과 국가의 실력은 복잡한 관 료조직과 법 조항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소중한 권리를 양도받은 지도자의 의지와 책임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마르셀이 그랬던 것처럼 최고 통치자에게 그가 진정한 국민의 편인지 물어야 한다. 관료조직과 함께 책임 회피의 늪에서 헤매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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