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쇼와(昭和) 16년(1941). 교토의 사제(師弟)들, 또는 신국의 사제(司祭)들.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을 향한 일본 교토학파의 좌담 중 한 대목을 읽자.

“고사카 : [세계사는] 죄악을 씻어주는 정화(淨化)입니다. / 고야마: 그렇지요. 세계사는 죄악의 정화입니다. 천국과 지옥의 경계에 역사가 있습니다. / 고사카: 얼마 전 니시다 선생도, 세계 역사는 인류 영혼의 연옥이다, 정죄계(淨罪界)다, 전쟁에도 그러한 의미가 있을 거다, (…) 라고 했습니다. 세계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전쟁이 결정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계 역사는 연옥인 것입니다.”(<태평양전쟁의 사상>, 221쪽)

저들에게 세계사는 ‘죄’를 씻어주는 정화작용을 한다. 세계사는 ‘정죄(淨罪)’의 신성한 의례다. 세계사는 죄를 씻는 시공간으로서, 천국의 낙토와 지옥의 죄인들을 매개하는 경계영역이다. 그런 한에서 세계사는 천국과 지옥 사이의 연옥이며, 연옥인 세계사는 그러므로 구원사(救援史)이다. 교토의 사제(師弟/司祭)들은 말한다. 세계사는 인류 영혼의 거대한 정죄계로서의 연옥이라고, 그 연옥을 흐르는 것이 전쟁에서 흘리는 피라고, 그 피가 죄를 씻는 성수(聖水)이며 전쟁에서 뜯겨나가는 그 살점이 세계사가 구원사로 자라는 신성한 양식이라고. 교토학파의 사제들은 환속화된 연옥의 개념을 설정함으로써 전쟁인을 생산하는 주체화 공정을 찬란한 구원의 후광으로 둘러친다. 그들은 연옥을 통해 전쟁인들의 살과 피와 심장을 남김없이 빨아먹으면서도 안전하고도 완전하게 구원될 것이었다. 그들의 연옥이 정죄의 구원사라는 후광 속에서 삶 일반의 탈취와 강탈의 시공간에 봉헌하고 있는 환속화된 신학적 개념인 것은 그런 까닭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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