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 발굴 사업의 필요성

 

유해 발굴 :‘비정상적 죽음’의 정상화

많은 연구들은 인간의 죽음을‘ 신체 및 정신적 종결’의 의미로 보지 않고‘ 사회적 재통합’의 의미로 보았으며, 이 과정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의례들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또한 죽음 이후 적절한 의례과정을 거친 죽음을‘ 정상적 죽음’이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를‘ 비정상적 죽음’이라 칭하였다. 이처럼 죽음을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으로 구분한다는 것은 죽음의 예견 가능성과도 상당한 연관이 있지만, 죽음 이후 새로운 지위로의 전이가 얼마나 원활하게 이루어지는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특히‘ 비정상적 죽음’은 적절한 의례 과정이 생략되어 죽은 자의 영혼이 이승과 저승 양쪽 모두로 가지 못하고‘ 어중간하게 떠도는 상태’를 말한다. 위와 같은 죽음의 분류로 볼 때 국가 폭력과 연관된 실종, 학살, 고문에 의한 죽음 및 암살 등은 비정상적 죽음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이 죽음의 대부분은 국가 폭력과 연관되어 비밀리에 진행되었고, 희생자의 대부분이 비참한 죽음을 맞았으며, 또한 많은 경우에서 시체를 찾을 수 없어 정상적인 의례를 행할 수 없었다.

거시적 입장에서 고려해본다면 비정상적 죽음이 공식적인 사회담론으로 자리 잡는가에 대한 논의는 결국 해당 사회가 정해놓은 의례의 범주로 들어올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이다. 가까운 사례를 들어볼 때,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피해자들은 그 진실이 정치적으로 공표되고 나서야 국가의례의 과정 속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 이전까지 광주 민주화운동의 피해자들은 단지 비공식적 기억의 범주에서만 떠도는‘ 유령’이었으며, 정상적인 의례 행위를 거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국가폭력과 연관된 비공식적 죽음의 연구에서는 이 문제가 어떤 정치적 타협을 통해 공식적 지위를 갖는가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이보다 새로운 지위를 부여받을 수 있는 의례과정과 이 기제의 함의성에 대해 분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전 세계의 사례를 통해 볼 때, 일반적으로 대규모 집단 학살 및 국가폭력 살인은 매장지를 남기는 것이 대부분이다. 법의학적 측면에서 볼 때, 매장지의 존재는 사건의 재구성과 진실규명이 더욱 용이함을 말하며, 그러므로 피학살자 및 피해자들의 유해를 발굴한다는 것은 국가폭력의 제 1차적 증거를 찾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유해가 언제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그 ‘뼈’가 60여 년간‘ 이적’(利敵)의 낙인과 ‘한’(恨)을 품은 채 산천에 버려져 있던 것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사회에서 어떤 이가 실종되어 시신을 찾지 못했다는 것은 죽은 자와 산자 모두에게 엄청난 고통이다. 그러므로 가족들은 실종자의 신체가 발견된 후 보다 정상적으로 매장되어 영혼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이때 유해 발굴은‘ 죽음을 처리하는 관습’의 측면에서 희생자들의 영혼 및 육체에 안식을 준다는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자들의 육체를 폭력 이전의 상태로 원상회복 할 수는 없겠지만‘, 죽었으되 죽지않은 생명’이 되어버린 피학살자들의 유해를 발굴하여 이들에게 새로운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사회로의 재통합’이라는 의미를 주는 것이다.

유해 발굴 : 과거 청산에서의 기념과 위령

국가폭력에 의한 피학살 사건의 대부분은 대개 과거 청산이라는 과정에서 행해진다. 과거 청산 혹은‘ 이행기 정의’란 과거 특정 국가 정치체제 혹은 전쟁 하에서 저질러진 잔혹 행위 및 인권유린들을 새로운 체제 하에서 어떻게 청산해야 하는 가의 문제를 말한다. 20세기 이후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전쟁과 폭력, 지역분쟁, 독재국가의 출현, 인종분쟁 등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애물이 되었다. 이에 독재 및 권위주의 정권을 겪었던 많은 국가에서는 정권이 교체된 후 당시의 국가폭력이나 인권유린에 대한 책임을 묻고 다시는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과거청산을 실시하였다.

과거 청산의 규모와 방법은 사회적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주요 로드맵은 일정한 유형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과거 청산의 주요 로드맵으로는‘ 진상규명’‘, 가해자 처벌’‘, 피해자 배보상’‘, 화해와 역사화’와 같은 네 가지 요소를 들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청산의 본질은 배상의 근본적 성격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다른 측면으로 인식될 수 있다. 피해자를 위한 배상 방식에는 원상회복, 금전 배상, 사회복귀, 만족, 재발방지의 보증과 같은 것들이 있는데, 이중 가장 좋은 배상 방식으로는 원상회복을 들 수 있다. 이것은 모든 피해 대상의 모습을 폭력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대다수 과거청산 사건들은 피해자들이 사망하거나 치명적 상해를 당해 실질적인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으며, 민간인 학살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므로 국가는 피해자들의 영적 존재에 상징적인 원상회복을 이루기 위해 각종 의례를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국가폭력에 의해 발생한 원혼을 국가의례 차원의‘ 제사’를 통해 위로함을 의미하며, 이러한 일련의 행위를 흔히‘ 기념 혹은 위령’이라고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유해 발굴은 진상규명이라는 과거청산의 제 1차적 범주에도 포함될 뿐만 아니라 과거청산의 결정적 범주인‘ 기념 혹은 위령’까지도 포함할 수 있는 포괄적 사업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유해 발굴은 역사적 사실(事實)의 실재 여부를 증명하기 위한‘ 물증을 찾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역할 이외에도 한동안 공식적 기억에서 제외되었던‘ 비공식적 담론’을 활성화시켜‘ 사회적 기억’을 회복하는데도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다.

▲ 노용석(부산외국어대) HK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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