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신문사에서 메시지가 왔다. 원고 의뢰였다. 21세기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글이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학교 구성원들의 관심을 고려해 보았을 때 필자는 21세기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논의보다 마르크스에 대한 일반적 오해를 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랫글은 이런 오해에 대한 한 마르크스주의자의 답변이다.

공산주의의 필연적 도래?

▲ 마르크스의 사상은 <자본>을 통해 재구성되어야 한다.

마르크스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그의 역사 철학에 관한 것이다. 흔히들‘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 혁명 통해 자본주의 사회는 필연적으로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한다고 주장했다’고 믿는다. 일반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지식인들조차 그렇게 생각한다. 역사는 특정한 목적을 향해 움직이며, 그 목적을 실현하는 역사의 주체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의 위하여>에서 자신의 역사관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놓았다. 소련에서 발간된 스탈린주의 교과서들 역시 공산주의의 필연적 도래라는 신화를 퍼뜨렸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는 일종의 작업가설이었다. 정치경제학 비판을 앞으로 이런 방식으로 하겠다는 계획말이다. 실제 마르크스는 <자본>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그 자신의 작업계획을 크게 변경한다. <자본>의 제 1초고인 <정치경제학비판 요강>과 완성본인 <자본>은 그 체계와 내용에 있어서 심대한 변화를 겪는다. <요강>에서 나타나는 헤겔적 언어는 서술 과정에서 많이 사라지며 역사의 목적론도 정정된다.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역사철학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관계에 대한 구조분석에 집중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원리를 탐구하는 것이 이 저작의 목적이다. <자본>은 역사의 어떤 방향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자본주의적 관계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을 역사철학이 아니라 역사과학이라 불러야 한다고 했다.

자본주의가 붕괴한다고?

▲ <1910-2010년간 미국 소득 불평등>: 2012년 상위10%가 미국 GNP의 50%가량 차지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임노동을 착취하며, 주기적인 구조적 위기에 직면한다. 주기적이라는 말은 경제가 장기적 상승국면과 장기적 하강국면을 경유한다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마르크스는 장기 하강국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기 성장국면도 있다고 했다’는 점이다. 다만 성장이 필연적으로 구조적 위기의 조건이 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핵심적 주장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라는 법칙으로 구체화했다. 이 법칙은 이윤율이 상승하는 국면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하강국면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1870년대 이후 1920년대 대공황까지, 1970년대 이후 현재까지 그와 같은 구조적 위기는 존재했다. 마르크스는 구조적 위기를 대체할 새로운 제도적 혁신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현재의 위기는 지속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말하는 경제의 붕괴다. 경제의 붕괴는 필연적으로 공산주의가 도래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가 저성장, 마이너스 성장이 지속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현재 세계경제의 상당 부분이 이 상태에 있다. 이것이 마르크스의 위기(crises) 이론이다. 붕괴의 의미를 자본주의가망해 공산주의로 이행한다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궁핍화란 무엇인가?

대중적인 오해를 한 가지 더 정정하자. 그 오해란 마르크스가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빈곤해지기 때문에 반체제 운동에 나선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다. 마르크스는 시장경쟁으로 인해 자본은 지속해서 생산수단을 개선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를 기술편향적 축적이라고 한다. 그 결과 자본주의 체제는 노동생산성이 향상되고 경제가 성장한다. 물론 구조적 위기를 겪으면서.

노동생산성이 증대한다는 것은 단위 시간 당 생산되는 재화의 양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이 일정한 노동소득배분율을 유지한다면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지속해서 증가할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논의를 전개하면서 노동소득배분율을 50%로 가정한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지속해서 성장한다고 한 것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노동자들의 상태가 절대적인 빈곤 상태(poverty)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이 지속적으로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을 때 노동자들의 직업안정성, 소득은 지속해서 위기에 놓여진다. 정리해고, 실업, 불안정고용, 저금화가 그런 불안정성의 다른 표현이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의 궁핍화(misery)의 의미이다.

노동자운동은 유효한가?

마르크스의 요지는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되는 한 이런 노동자계급의 불안정한 삶은 결코 극복될 수 없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불안정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연합적 생산양식에 토대를 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사회변혁은 자동적으로 이뤄진다고 하진 않았다. 반체제적인 급진적 이데올로기 없이, 노동자계급 스스로 조직되는 것 없이 체제 이행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체제 변동은 자동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본주의를 끝장낼 존재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낭만적 사고는 마르크스의 후기저작에서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도움말

작업가설
여러가지 얻은 실험결과를 기초로 하여 다음의 실험계획을 세우기 위한 잠정적인 가설을 뜻한다.

구조적 위기
사회체제를 위협하는 계기가 그 체제 구조 자체에 내재해 있는 경우를 뜻한다.

생산양식
마르크스가 경제학 및 역사이론의 개념으로서 규정한 것으로 '생산의 방법'을 의미한다. 좁은 의미로는 직접적 생산과정에서의 물질적 생산 방법을 의미하며, 넓은 의미로는 역사이론적인 관점에 서서 생산력들과 생산관계들이 상호 관련되어 있는 총체를 의미한다.

다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노동자들의삶은 근본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노동운동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노동자들은 스스로 조직해야만 현재 획득한 자신들의 삶조차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자본은 마음씨가 좋아, 힘들어도 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껴안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위험을 노동자에게 전가해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다. 싸우지 않으면 노동자들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획득한 것조차 내놓아야 한다. 이것이 자본주의하에서 이루어지는 계급투쟁의 냉정한 현실이다.

이는 2014년 한국의 현실만 보아도 너무나 자명한 사실임을 알 수 있다. 철도 민영화에 맞선 철도노동자들의 파업, 노조탄압에 맞선 유성기업 노조의 투쟁,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삼성서비스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 등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다수의 우리학교 학생들도 결국 피고용자로서 노동자의 지위를 갖게 될 것이다. 마르크스는 바로 이 임금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을 분석하고 이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가능성을 탐색했다는 것만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 남종석(경제)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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