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페인 감독 '바튼 아카데미'(2023)

알렉산더 페인의 ‘바튼 아카데미’(2023)는 ‘죽은 시인의 사회’(1989)을 비틀어놓은 재해석이다. 상류계급 자제들이 다니는 사립 기숙학교에서 벌어지는 사제(師弟) 지간의 드라마라는 플롯의 근간은 같다. 다만 진취적이고 의욕 넘치며 보수적인 학풍에 저항하던 키팅 선생과 달리 ‘왕눈깔’ 폴 허넘(폴 지아매티)은 철지난 라틴어 격언을 입에 달고 살며 학교의 전통과 규율을 지킴에 있어선 융통성 없는 고지식한 보수주의자이고, 방학 동안 기숙사에 홀로 남게 되어 그가 보살펴야 할 학생 앵거스 털리(도미닉 세사)는 수업에 불성실하고 반항적인 태도로 속을 썩이는 문제아이니 청춘드라마의 콤비로서는 영 맞지 않는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영화의 감정적 울림은 물과 기름 같은 상극이었던 폴과 앵거스 두 사람이 어울림의 과정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하게 되는 과정에서 찾아온다. 점차 친밀해진 폴과 앵거스의 관계는 형식적인 선생과 학생을 넘어 유사 부자(父子)로까지 발전한다. 방황하던 청년은 선생에게서 열망하던 아버지의 자리를 보게 되면서 마음의 공허를 채우고, 혼자만의 삶에 침잠해 있던 폴은 어른의 본분을 다 하고는 굳어져있던 알의 껍데기를 깨고 바깥세상으로 나아간다.

‘아버지의 부재(不在)'라는 모티브는 영화의 내적 주제와도 맞닿아있다. 유력정치인의 아들에게 낙제점을 준 일을 질책하는 교장의 말에 폴은 학교의 창립이념을 내세우며 완강하게 맞선다. 이 도입부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친아버지를 만나기 위한 앵거스의 보스턴 행에 동행하던 중, 폴이 자신의 과거사를 털어놓으면서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하버드 재학 시절 상류층 자제였던 동료가 자신의 연구를 베꼈음에도 도리어 본인이 표절의 혐의를 뒤집어쓰고 학교를 나와야했던 쓰라린 경험은 그로 하여금 모교로 돌아와 교사직에 틀어박혀 세상과 척을 지고 살게 하는 평생의 상처가 된다.

사회학적으로 아버지란 단어는 질서와 합리성, 권력과 책임을 함축하며, 종교의 관점에서는 신 그 자체를 의미한다. 아버지가 가족 구성원을 통합하고 책임지는 존재라면, 신은 죄인을 심판하고 억울한 이를 구원해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바튼 아카데미’ 속 70년대의 미국은 ‘아버지의 부재’로 무질서해진 혼란하고 부조리한 사회상에 다름 아니다. 같은 학교 졸업생이라도 특권층의 자제는 자동으로 명문대에 입학해 신분을 대물림하고, 하층 계급의 자식은 베트남전에 총알받이로 끌려 나가야하는 판에 올바른 인재를 육성한다는 학교의 창립취지는 유명무실해졌다. 재혼한 앵거스의 어머니가 자식을 내버리다시피 한 상황은 이러한 시대의 맥락과 맞물리며 작게는 가족, 크게는 국가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의 부재’를 겪는 공동체의 균열과 붕괴, 아메리칸 드림의 퇴조라는 비판의식을 조형해낸다.

초상화에 그려진 모습으로만 등장하는 초대교장은 제 3의 주인공이다. 폴이 퇴학 직전에 몰린 앵거스를 감싸며 교직을 그만두는 결과를 감수할 수 있었던 건, 초대교장이 상처입은 자신을 받아주었던 인생의 경험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서 죽는다. 그리고 참된 어른의 자세를 배운 앵거스는 폴의 유산을 이어받아 다음 세대에 전할 것이다. ‘바튼 아카데미’는 아들이 아버지가 되어 또 다른 아들을 키워내는 세대 유전의 성장드라마인 셈이다.

                   조재휘 영화평론가
                   조재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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