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흥망은 자유롭게 말할 권리에 달렸다.’(<조선 지식인의 말하기 노트> 中) 조선 22대 임금 정조가 재위 기간 줄곧 강조한 메시지를 후손들은 이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나라가 흥하기 위해선 언로(言路)를 열고 누구나 간언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왕 중심제인 조선에서도 자유롭게 말할 권리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국가의 최고 법으로 자유롭게 말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 국민은 자유롭게 말할 권리를 보호받고 있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지난 2월 16일 카이스트(KAIST) 졸업식에서 한 졸업생이 대통령의 축사 도중 발언했다는 이유로 말 한 마디가 끝나기도 전에 경호원에 의해 급히 끌려 나갔다. 당시 경호처는 발언한 졸업생의 입을 틀어막고 사지를 들어 밖으로 내보낸 뒤, 별실에 강제 격리 조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입틀막’이라는 줄임말로 과잉 경호 논란이 일었다.

국내법상 권리를 행사하려는 사익이 사회 전체의 공익 등을 침해할 경우엔 개인에게 제재를 가할 수는 있다. 그런데 정녕 그 졸업생은 ‘해선 안 될’ 말을 했는가? 현장에서 졸업생이 외친 한마디는 “R&D(연구개발) 예산 삭감 복원하십시오”였다. 더군다나 졸업생이 끌려 나간 그 자리는 국내 과학 연구의 메카라 불리는 카이스트였다. IMF 시절에도 줄이지 않았던 R&D 예산을 정부가 33년 만에 대폭 삭감한 상황에서, 연구에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카이스트 학생들이 아무런 문제 제기를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을지도 모른다.

일각에선 발언한 졸업생의 당적을 문제 삼는다. 그가 녹색정의당 소속 대변인이라 대통령의 축사를 정쟁화 하려는 숨은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끌어내는 게 옳았단 것이다. 그러나 당적은 사건 이후 조사에서 밝혀진 바다. 결국 정치와 무관한 학생이었더라도 과잉 경호는 똑같이 이뤄졌을 테다. 설령 발언한 졸업생이 정당을 위한 정치적 행위였다는 점을 자인했다 한들 과잉 경호가 이뤄질 만큼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 누구에게나 정치적 발언을 할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만 해도 이른바 ‘입틀막’ 사태가 벌써 세 번째다. 지난 1월 한 국회의원이 전북 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입이 막힌 채 끌려 나갔다. 의료개혁 민생토론회에서 한 의사가 경호원들로부터 입이 막힌 채 끌려 나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경호처의 대응 논란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이번 일로 2013년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의 연설 영상이 재조명되고 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그는 자신의 연설 중 돌발 항의를 하는 청년에 대한 경호 개입을 제지한다. 청년의 요구는 들어주지 못할지라도, ‘민주적 과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경청하고 답변한다.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답변의 내용에서도, 대응 방식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민주주의 국가는 국가를 이루는 수많은 사람의 ‘말’이 모여 운영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 곧 주체이기 때문이다. 국가 운영에 있어 ‘말하는’ 모든 이들의 요구를 반영하라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우선 ‘들으라는’ 것이다. 국가와 정부는 들으라, 국민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윤다교 부대신문 국장
      윤다교 부대신문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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