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왜 사진전으로 향했나

 

지난달 5일부터 오늘(3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 <다른 길>이 개최됐다. 전시장 내부는 물론이고 입구 밖까지 사람으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적이고 있었다. 부모님 손을 잡고 온 어린이들부터 혼자 조용히 사진을 보며 사색하는 60대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박노해 시인이 사진으로 담은 아시아 전통마을들을 감상했다. 그렇게 관람객들은 시인이 세계 각지에서 엄선해온 배경 음악을 들으며‘ 다른 길’로의 여행을 하고 있었다.

사진전 춘추전국시대

▲ 지난달 16일, <라이언 맥긴리 - 청춘, 그 찬란한 기록> 마지막 전시를 찾은 사람들이 건물 밖까지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지난해 말부터 다양한 주제의 사진전이 열려 화제가 되고 있다. 박노해 시인의 <다른길> 뿐만 아니라 잡지‘ 라이프’에 실렸던 당대 최고 사진 작가들의 작품을 담은 <라이프 사진전>, 청춘의 다양한 모습을 거침없이 솔직하게 포착해낸 <라이언 맥긴리 - 청춘, 그 찬란한 기록>, 유명 스타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애니 레보비츠 사진전> 등 많은 사진전들이 흥행에 성공했다. <라이프 사진전>과 <애니 레보비츠 사진전>은 80일만에 각각 15만, 11만 관람객을 넘겼고, <라이언 맥긴리전>은 3개월동안 19만 명의 관람객을 동원했다.

왜 지금 사진전에 열광하나

많은 종류의 전시회들 중 유독 사진전이 흥행하고 있는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에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손꼽히고 있기도 하다. 남자친구와 함께 <애니 레보비츠 사진전>을 관람한 이수영(서울 광진구, 26) 씨는“ 식당에서 밥먹고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일상이 지루하던 참에 사진전이 열린다고 해서 이색적인 데이트를 위해 방문했다”며“ 영화는 질리고 뮤지컬 공연은 너무 비싸 엄두가 안났는데 사진전은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고 색다른 경험이어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림이나 조각 등 다른 예술 분야에 비해 공감하기 쉽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초등학생 딸과 함께 사진전을 관람한 김윤희(서울 종로구, 38) 씨는“ 지난 번에 딸과 함께 명화 전시회에 간 적이 있는데 그림이 너무 추상적이고 어려워 딸이 지루해했다”며“ 사진전은 그림 전시회에 비해 누구나 공감하기 쉬워서 접근성도 높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전시기획사의 입장에서는 다른 전시회에 비해 사진전이 투자 대비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됐다. 유명인들이 뛰어오르는 순간의 모습을 사진으로 모은 기획 <점핑위드러브전>을 진행한 사진기획사 코바나컨텐츠 관계자는“ 유명인들의 사진은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진전 자체가 다른 예술전시회에 비해 필요한 예산이 적고 전시 조건도 훨씬 덜 까다롭다”며 앞으로도 계속 사진전을 기획할 예정임을 밝혔다.

또한 최근 사진전들이 작품을 촬영 가능하게 허가했다는 점도 사진전의 흥행에 기여했다. 관람객들이 인상 깊은 작품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고, 그것을 본 다른 사람들이 참여하면서 입소문이 퍼진 것이다. 이렇듯 현재 사진전들은 대중성의 정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진전이 최근 들어 유독 흥행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다. 대림미술관 권정민 큐레이터는“ 전세계 전시 기획의 전체적인 흐름으로 봤을 때 사진전이 가장 각광받은 것은 2004년 전후”라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시기에 여러 사진전이 함께 개최되면서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사진전에는 한국 사진작가가 없다?

현재 흥행하고 있는 사진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외국 작가들의 전시회가 대부분이다. 국내 사진작가들의 전시는 작은 갤러리에서 소규모로 열리고 있고, 그 정보마저 알수 있는 길이 잘 없다. 국내 사진작가들의 전시가 적은 이유는 수익 창출을 우선시하는 전시기획사의 입장이 크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진학회 전시분과 운영위원 윤예준 씨는“ 우리나라 사진 작가들 중에는 단독으로 작품을 전시할 만큼 작품 수가 많은 사람이 적다”며“ 또한 증명되지 않은 국내 작가들보다 외국 순회 전시를 여러 번 거친 외국 유명 작가들을 섭외하는 것이 수익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소비자들 또한 국내 작가의 작품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며 전시회 관람을 꺼리는 모습이었다. 이남경(서울 동대문구, 20) 씨는“ 우리나라 작가들의 사진은 굳이 돈 내고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라이언 맥긴리전>의 ㄱ큐레이터는 군중심리에 따라 움직히는 관람객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관람객들의 대부분이 작품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하지는 않고‘ 유명한 사람의 전시회이고, 사람들이 좋다고 하니까 나도 한 번 가봐야지’라는 생각으로 방문하는 것 같다”며 명성에 집착하는 소비자들의 모습을 꼬집었다. 한국사진작가협회 부산지회 이원영 씨는“ 국내에서 진행되는 사진전에서 국내 작가들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라며 “국내 작가들도 외국 작가 못지않게 뛰어나다는 점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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