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대학을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왜냐하면 필자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필자가 지금 교수인지 아니면 영업사원인지 모르겠다. 97년 2학기에 부산대에 왔으니, 벌써 14년이 되어 간다. 처음 교수가 되었을 때와 지금은 너무나도 달라진 것이다. 독일에서 유학하고 처음 대학에 들어왔을 때에는 몇 가지 꿈이 있었다. 필자 스스로를 위해서는 플라톤 전체를 그리스어로부터 번역하는 것 그리고 대학원생들에게 그리스어를 가르쳐서 학문의 동역자를 키워 나가는 것 등이었다. 그리고 둘째 학기에 대학원생들이 그 뜻을 받아들여 줘서 독일에서 그리스어와 독일어 대역본 책을 단체 주문하여 방학 때 예습하여 왔을 때는 뛸 듯이 기뻤다. 그래서 필자도 수업 시간 이외에 그리스어, 라틴어, 독일어를 가르쳤다. 학생들도 열심히 배웠다. 그러다가 외환위기가 나서 IMF 관리체제가 되었다. 그러자 우선 대학원에 오는 학생이 없어졌다. 그와 함께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가르칠 학생이 없어지고, 점차 독일어를 가르칠 학생조차 없어졌다. 학부생들도 책을 읽으려 하지 않고, 레포트는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 오는 일이 생겨났다. 레포트를 검토하는 것이 무의미해지기 시작했다. 졸업생들의 취직률 또한 낮아서 사은회에 가기가 민망스러워지기 시작하다가 드디어 없어졌다.

처음 교수가 되었을 때에는 논문을 몇 년에 한 편만 쓰면 되었다. 그 이상은 논문을 더 쓰든 아니면 책을 내던, 교수의 재량에 달려 있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학문적 야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일 년에 한 편으로도 부족하다. 그리고 수업도 많이 하고 대학원생 지도도 많이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정작 책을 쓸 시간은 없다. 왜냐면 책 한 권 쓰는 것이 논문 대여섯 편 이상의 공이 드는데, 평가는 책이 논문 두 편만큼도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논문 편수에 목을 매는 이유는 그를 통해서 교수가 평가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논문 편수와 수업 수 그리고 학생 지도 수 등을 통한 교수업적 평가는 월급에도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이제는 연금도 그에 좌우된다. 그리고 그 업적평가-연봉-연금의 상관관계는 계속해서 높아져 가고 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논문 쓰기에 집중해도 정교수가 되고 나서는 학문적 역량이 집결된 책을 출판하려던 계획도 힘들어졌다.

필자가 여기서 단지 교수 생활하기 힘들어졌다는 불평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학생과 교수 그리고 대학 자체를 함께 내어 몰고 닦달하는, 그리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를 지배하는, 이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염려한다. 신자유주의 시스템은 학생들도 점차 취직의 스펙으로, 교수도 업적 평가제로 그리고 대학 자체도 대학평가로 혹독하게 몰아간다. 모든 것이 평가이고 경쟁이다. 이때 기본 모토는‘ 한 명의 인재가 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이다. 학생이나 교수나 모두 인적 자원이고, 대학은 ‘첨단 지식 기반 사회의 지식 생산기지’이다. 정권이 김대중이나 노무현으로 바뀌어도 이러한 경쟁과 시장의 경향은 강화되기만 해왔다. 그러므로 대학은 더 이상‘ 진리의 전당’도 아니고‘, 비판정신’을 길러 내는 것을 목표로 하지도 않는다. 근대 국가의 무한 경쟁 속에 몰입되어 좌우를 돌아봄 없이 정치권력이나 경제 권력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할 인재를 만들어 내는 것이 대학의 목표이다. 자, 이제 봄이다. 그래도 봄에는 무언가 싹터 오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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