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들어와 보낸 세월이 벌써 30여 년이나 흘렀어도, 새 학기 봄은 봄 같지 않은 날씨에도 여전히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학생들을 보노라면 70년대 필자의 대학생활이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가슴에 꿈을 가득 안고 들어섰던 교정에 무지개가 피어나는 듯한 환상, 입학 3년 만에 잘못된 대학생활을 고쳐보고 싶어 군 입대를 결심했던 일, 복학 후에 제대로 목표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 이제야 대학생활에 익숙해진 자신에 뿌듯해졌던 성취감 등등 시행착오를 거친 기억들을 되돌아보면서 지금의 대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다. 요즘의 세태를 보면 남을 배려하고 자신을 살펴보는 자세가 더욱 필요한 것 같다.

사람이 남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몇 년 전에 경제 석학이 한국경제포럼에 초청을 받아 입국했는데, 한국사람들이 지하철을 탈 때 남을 배려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한국경제의 전망을 낙관적이지 않다고 본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남을 배려하지 않는 모습을 흔히 보게 된다.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내리고 난 다음에 타는 것이 보통이지만, 요즘은 먼저 타고 내리거나 동시에 타고내리는 경우가 일상적이다. 마음에 그렇게도 여유가 없는 것일까? 또한 교정에서도 학생들은 길을 가면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주변의 사람이나 자동차 등의 상황을 무시한 채 걷는 모습을 흔히 보게 된다. 드물게 아찔한 순간도 있다. 질서란 단순히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것을 말한다. 이 하찮은 배려는 자신의 주변이나 사람을 살펴보는 마음가짐을 갖게 하고, 나아가 넓은 사회를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사람들이 봉사활동을 많이 하여 국위선양을 하는듯한 것도 역시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내에서는 대기업들이 영세한 구멍가게의 상권까지 빼앗으려는 추태를 들먹일 것도 없이 서로 배려할줄 모르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는 것은 동전의 양면으로 보아야 할까

배려심은 단지 남을 배려하는 것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향해 있어야 한다. 교재에 없는 내용을 보충하면 시험을 칠 때 어떻게 하면 좋으냐는 질문이 더러 나오고, 당연한 출석에 집착하거나 개근하여 열심히 들었는데 왜 예상보다 학점이 낮게 나오느냐고 불만인 학생들을 많다. 첫 수업시간에 하는 얘기다. 필자가 하는 역사 과목은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역사 사실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진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스무 살 갓 넘은 대학생이 그렇듯이 판에 박힌 중⋅고교 시절의 때를 벗겨 내지 못하고 대학생활에서도 연장되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중간고사 전후에 이르러 시행되는 학점포기제의 악법(?)은,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쉽게 포기하는 버릇을 남기는, 자신을 배려하지 못하는 마음가짐이다.

진부하게도 대학생활은 학점이 전부가 아니다. 다양한 생활경험을 쌓아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자신을 배려하는 실험대이다. 사회에서 실패는 돌이켜 회복하기가 힘들지만 말이다. 자신의 꿋꿋한 의지를 시험하고 자신의 장단점을 깨닫는 자기 통찰력을 길러 보다 나은 자신을 가꾸어가는 배려의 마당이다. 대학 시절에 필자도 그러했겠지만, 시대가 많이 바뀐 요즘의 대학생들도 시행착오를 겪고 자기반성을 통해 보다 나은 수준으로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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