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 교수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88만원 세대>를 절판하겠다고 밝혔다. 공동저자인 박권일 또한 우교수의 일방적인 결정에 유감을 표하면서‘ 이유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절판에는 동의한다’고 했다. 이 시대 젊은이들의 주거권을 은유화한 ‘첫 섹스의 경제학’이라는 발랄한 도입으로 시작하여 ‘차라리 토익책을 덮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던져라’는 발칙한 주문으로 끝나는 <88만원 세대>가 출간된 것은 약 6년 전이었다. 이후 세대론과 거기에서 파생한 여러 층위의 담론들이 이어졌고, 정치권에서 청년에 대한 대책을 주요 의제로 설정하는 것이 당연시되었으며, 󰡐88만원 세대’란 말 자체가 이제 하나의 클리셰로 여겨질만큼 ‘성공한’ 사회과학서적이었다. 그런데 우교수는 ‘처음에 이 책을 쓰면서 생각한 변화는 벌어지지 않았다’며 ‘청춘들이 움직이지 않을 이유를 삼게 된 책’이라고 돌연한 절판 ‘선언’의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덧붙였다. 󰡐청춘이여, 정신 좀 차려라’고.

<88만원 세대>의 ‘에필로그’는 그보다 몇 해 전 출간되어 특히 20대를 대상으로 판매고를 올리던 한 책을 두고 ‘청년백수들에게 카운슬링을 가장한 모욕을 퍼붓고는 그 글들을 모아 책으로 냈다’고 맹비난한 부분이 있다. 개인의 무능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모순과 결함을 짚어내면서 ‘It's not your fault’(영화 <굿 윌 헌팅>)라고 말해주던 목소리는 어디로 갔는가. 6년이 흐른 지금, 우교수의 말대로 88만원 세대에게 별다른 ‘변화는 벌어지지 않았다'. 욕을 퍼붓던 카운슬러 자리에 힐링 전도사와 멘토들이 장사진을 이룬 채 ‘복음’과 ‘처방전’을 건네는 정도의 변화랄까. 안락의자에 앉은 멘토들과 그에 감읍한 청춘들이 열지은 이 ‘힐링필드’의 한 복판에 내지른 ‘준엄한 일갈’은 그래서 퇴보한 자가당착이다.

저자들의 진단대로‘ 88만원 세대’론의 시효는 이제 끝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책에 가치를 부여할 때, 오직 종잇장에 찍힌 ‘글’ 그 자체로만 판단하는 경우는 드물다. 때로는 책 밖에서 말과 글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서 끝까지 ‘책임 집필’했던 저자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근래 타계한 스테판 에셀과 그의 저작 <분노하라>를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변희재가 ‘배제론’에 가까운 세대 담론을 <조선일보>에 싣자 이에 우교수가 맞장구쳤던 때가 ‘연대론’에 가까운 <88만원 세대>의 출간 고작 이듬해였고, 두 저자의 사이가 멀어진 것도 이 일 때문이었다. 절판은 이미 그 무렵 내장되었는지도 모른다. ‘짱돌을 던져라’와‘분노하라’의 사이는 그렇게 아득해졌다.

책 한 권이 세상을 바꾸는 일은 흔치 않다. 바꿀 수 있다 믿는다면 그것은 ‘오만’이거나 ‘편견’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그 ‘오만과 편견’을 포기하는 순간 세상은 여전할 것이고 책은 하나의 종이뭉치거나 한낱 읽을 거리에 그치고 만다. 세상과 맞서면서 만신창이가 된 오만과 편견만이 시간과 대중의 검증을 거친 후 세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보다 나은 세상을 불러온 책을 ‘고전’이라 믿는다. 오만과 편견 사이를 오가며 페이지마다 늘어뜨린 저자의 열망이 현실로 이뤄지는 시점은 거기, 사람들의 손때가 세월을 두고 묻을 때 만이다. 필요한 것은 ‘정신’ 운운이 아니라 끝끝내 토익책을 덮고 짱돌을 들 수 없었던 청춘에 대한 ‘후속’ 성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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