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곱해서 마이너스가 되는 수가 있어요”라고 한 수학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서 제곱하면 무조건 양이 되는게 수학의 상식 아닌가?”라고 하며 의아해했다. 수학자는 어떻게든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다. 그래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그렇군요, 그럼 상상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수로 정의합시다”.

상상의 수를 우리는 실수와 대비해서 허수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정의에 살짝 유감이 생긴다. 실제 존재하지 않지만 상상하면 생기는 수를 상상의 수라고 하지 않고 허수라고 부르는 것은 수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학을 허황된 학문 취급하는 느낌도 든다. 배우는 입장, 특히 시험을 보고 정답을 맞춰야 하는 학생은 허황된 숫자라 해도 받아들이고 외워야 한다. 하지만 안타까움이 클 수밖에 없다. 허수가 현실에서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다는 사실을, 붙여진 이름 때문에 처음부터 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숫자 1은 현실적인 수인가? 감 하나와 다른 감 하나를 더하는 것을 1+1=2로 하는 것만큼 비현실적인 계산이 어디 있나. 특정 거리를 1미터라고 표준화하는 것도 사실은 약속일 뿐이다. 하지만 감 하나와 다른 감 하나를 더하면 2가 된다고 하는 것으로부터 모든 경제 이론이 시작되며 일정 거리를 1미터라고 한 약속 덕분에 한치의 오차도 허락할 수 없는 우주개발 로켓을 설계해 화성 탐사를 한다. 수학적 상상이 현실을 만든 사례는 이외에도 무수히 많다. 허수라고 이름 붙여진 상상의 수도 고등학교 때부터 배우는 오일러 공식, 파동역학, 양자역학 등을 통해 현실 세계에서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허수란 이름을 면할 수 없다.

허수의 실제 쓰임새는 전문가들에게 맡겨 두고 제곱하면 마이너스가 되는 상황을 현실에서 상상해 보자. 우선 욕망이란 것이 머리에 떠오른다. 욕망하면 아무것도 없었던 곳에 무언가 기어이 만들어 내고 만다. 텅 빈 땅에 씨앗을 뿌려 옥수수를 길러 무에서 유를 탄생시킨다. 옥수수 씨를 뿌려 1이 2, 2가 4가 되게 한다. 그런데 욕망도 덩달아 커져서 1이 2를 거치지 않고 10, 100, 1024가 되게 하고 싶어진다. 옥수수 밭에 화학비료, 농약을 뿌리고 심지어 유전자 변형 씨앗까지 이용한다. 수의 씨앗이 욕망의 씨앗이 된 경우다. 처음에는 욕망대로 되는 듯 보였던 옥수수 밭이 결국 황폐해지고 만다. 황폐한 땅에 원래의 씨를 뿌려도 옥수수는 더 이상 자라지 못한다. 제곱해서 마이너스가 되어 버렸다. 엄연한 현실이고 허수란 허황된 숫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상상하면 지극한 현실이 된다.

제곱하면 마이너스 되는 두번째 예는 과학 기술이 가져온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들 수 있다. 탄소는 에너지가 되어 과학 기술 문명을 꽃피웠지만 기후 재앙도 가져왔다. 코로나 극복을 위해 만들어진 유전자 백신이 의도치 않게 생명을 앗아가기도 했다.

사람들은 상상의 수를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고 제곱해 마이너스가 되는 수를 알려 준 수학자를 찾아가 인류를 위해 상상의 수를 올바로 활용할 수 있는 배움을 청했다. 수학자는 “아, 그런데 여러분은 디지털 세계 가상현실 속에서 이미 사용하고 계셔서 더 이상 알려 드릴 건 없어요” 라고 하면서, “그런데 지구 저편에 나의 수를 여전히 허수라고 부르는 이상한 나라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깨달은 진실을 전해 주세요” 라고 부탁했다.

조재원 UNIST 교수
조재원 UNIST 교수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