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선 앞둔 동해남부선 해안 구간

지난 11월 21일, 무궁화호 1784 열차는 예정 시각에서 15분을 더 넘긴14시 35분까지도 송정역 플랫폼을떠나지 못했다. 동대구에서 부전역으로 향하는 하행선 열차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교호 통행이 불가능한 단선 철도의 흔한 지연 정차였고, 이를 알리는 역무원의 안내방송만 두 차례 울렸을 뿐 객실은 고요할따름이었다. 더딘 속도 때문인지 애초부터 좌석에 몸을 파묻은 채 잠을 청한 이들이 많은 터였다. 어차피 일주일 남짓이었다. 곧 연착은 기억의 영역으로 편입된다.

다음 달 1일, 동해남부선 일부가 폐기된다. 부산⋅ 울산권 광역철도망 구축을 위해 1993년부터 시작된 사업의 일환이다. (부대신문 1455호,‘ 동해남부선 해운대~송정 구간, 추억 속으로 사라진다’) 미포와 청사포 등 해안 노선이 포함된 구간은 폐지되고 근대문화재로 등록된 송정역을 비롯하여 좌천과 월내, 서생 등의 역사(驛舍)는 제구실을 잃는다. 2일부터 열차는 해운대 도심을 우회하여 장산을 관통하는 새 복선 철로 위를 달릴 것이다. 동해남부선 전체의 복선화 사업도 2017년 말 개통을 목표로 기공식과 업무협약체결이 한창이다.

일부에겐 숙원과도 같았을 테고 대부분에겐 개선이자 발전일 터였다. 도심의 교통 체증을 유발하던 건널목들은 사라지고 직선화와 복선화에 힘입어 이동 시간도 단축되며, 늘어난 선로 용량은 더 많은 운행을 가능하게 한다. 전 구간의 공사가 완료되면 그 편익들은 훨씬 늘어날 것이다.그 때문인지 곧 잃어버릴 풍경이라 불리기엔 어울리지 않는 활기마저 느껴졌다. 카메라를 든 이들이 역사 이곳저곳을 누비며 셔터를 눌러댔고, 막 당도한 열차에선 엠티를 온 듯한 남녀 대학생 스무 명 남짓이 내려 왁자하게 플랫폼을 메웠다. 폐선 을앞둔 이즈음엔 주말이면 입석도 거의 매진이라고 승무원은 말한다.

누군가에겐 아쉬움이었고, 이별이었다. 청사포 건널목에서 안전원으로 일하는 김천석(81) 씨는 50년대의 어느 여름, 아내와 함께 범일역에서 올라탔던 송정행 열차를 또렷이기억했다.“ 안에 들어가는 것만도 A석, 차량 옆에 매달려가는 건 B석, 객차 지붕 위에 올라가는 걸 C석이라부를 정도로 사람이 많았어. 하도 고생해서 그 다음부턴 기차 타고 가는피서는 다시는 안갔어.” 얼마간 아쉽다고는 해도, 건널목이 지하화되고 노선이 늘어나는 건 좋다고도 덧붙였다. 노선이 폐지되는 12월 1일 자정 부로 그는 건널목을 관리하는 계약직 일자리를 잃게 된다.

1930년대 중반, 일제가 보다 효율적인 수탈을 위해 설치했던 이들 철로와 역사가 어느덧 세월의 더께를얹고 서정과 낭만의 대상으로 변하더니, 이제 곧 사라질 운명이 되었다. 안타까움도 있고 반대도 없지 않았을 테지만, 몇해 전 통일호 통근열차가 폐지될 때에 비하자면 아주 조용한 임종이다. 그 조용함은 개발의 당위를 인정하는 암묵적이고 전반적인 동의로 읽어야겠지만, 조금만 더디고 조금만 불편하면 좀체 감내하지 못하고 오로지 사라져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우리 시대의 병증과 관련 있는 것은 아닌지.

뗑뗑뗑뗑……. 차단봉의 적신호가 행인들을 막아선 사이 순식간에 달려온 열차는 어스름 깔린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바다는 불을 켜오고, 오래된 풍경 하나가 또 이렇게 과거 속으로 저물어간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