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이 사실상 처음으로 ‘실제 행동’ 단계에 들어갔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일 산업은행을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고시했으며, 2005년 공공기관 1차 이전 당시 지정했던 ‘수도권 잔류기관’에서도 제외했다. 당초 산은 이전은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도 포함되었을 정도로 큰 이슈였지만, 찬반 논쟁에 휘말려 실행조차 불투명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 고시를 통해 행정 절차를 마무리 지으며 적어도 거스를 수 없는 단계로 넘어온 것이다. 지역 언론과 시민들 역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최근 수년간 지역 언론과 시민들의 분위기를 보면 부산이라는 광역시 전체가 산업은행 이전을 지상과제로 설정한 것만 같다. 물론 산은 이전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지역 언론과 시민들은 부산을 금융허브·국제금융도시로 만드는 것보다 ‘산은 이전’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역 일간지는 산은 이전 과정에서의 절차에 집중하고 있으며, 시민들의 화젯거리에는 '입구에 드러누워 반대하는' 산은 노조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산은 이전에 후속하는 선순환의 효과와 국제금융도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들은 찾기 어렵고, 모두들 개별 기업이 가져다줄 효용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구도는 다른 문제점을 만든다. 일부 수도권 일극주의적 정치권과 언론은 부산 시민의 열망을 ‘산업은행을 내놓으라며 ‘땡깡’부리는 부산’으로 프레이밍하고 있다. 큰 그림을 보지 않고 이전 자체에만 집중하다 보니, 산은 이전의 조속한 추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집회나 시 차원에서 법 개정을 위해 정치적으로 힘쓰는 모습조차 지역 이기주의로 비추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프레임은 현 상황을 '수도권 대 비수도권의 대결 구도' 혹은 '부산시의 일방적 산은 이전 요구'로 비출 여지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정치권에서 가장 강력하게 산은 이전을 반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정책위의장은 지난 4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사직구장 돔구장화’를 제시했다. '돔구장 줄게 산은 다오'라고 거래를 제시한 것이다. 산은이 금도끼, 은도끼처럼 거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 역시 이러한 프레이밍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부산시도, 지역 언론도 나무가 아닌 숲에 집중해야 한다. 산은 이전의 쟁점을 개별 이슈에 대한 찬반 논란에서 국제금융도시라는 대의 명분에 대한 걸림돌로 판을 키워야 한다. 산은 이전은 ‘목표’가 아닌 ‘수단’이다. 산은 이전을 시민들이 그토록 바라 마지않는 것은 산은 개별 기업의 이전이 중요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국제금융도시라는 부산의 백년대계에서 가장 중요한 퍼즐의 한 조각이기 때문이다. 부산 시민들은 ‘산은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일부 정치권에서 금융허브 부산이라는 퍼즐의 한 조각을 빼앗으려 하는 것이다. 당면과제인 산업은행법 개정 역시 대의명분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이해시킨 상황에서라면 더욱 유리할 것이다. 민·관 그리고 지역 언론이 합심해 국제금융도시라는 브랜드와 지역 균형발전에 대해 지속적으로 다양한 비전을 제시·홍보하며, 다양한 사안에 있어 지역 안배 역시 더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일단 산은 이전이 성공하면, 산은은 국제금융도시의 전위대(Vanguard)가 된다. 산은을 시작으로 수출입은행·무역보험공사와 같은 무역 공기업 이전 추진도 노려볼 만하다. 그렇게 하나둘 금융생태계가 완성되면 해운사·상사 등 물류 업계를 포함한 사기업의 유치가 이어질 것이고, 그 끝은 ‘노인과 바다’ 부산을 젊게 되돌리는 마침표가 될 것이다. 엑스포는 십년지계지만, 국제금융도시는 백년대계다. 산은 이전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되어야 한다.

취재팀 전형서 기자
취재팀 전형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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