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기준으로 인간 관계 분류
-목적 지향·약한 연결고리 관계
-다양해진 비대면 교류 여파
-"'끼리끼리 문화' 강화 우려"

우리 대학 재학생 A(무역학, 21) 씨는 최근 친구들과 대화하던 중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소수에게만 공유했던 A 씨의 인스타그램 비공개 계정이 있다는 것을 다른 친구들이 알게 됐기 때문이다. 평소 A 씨는 인스타그램 공개 계정을 통해 대부분의 지인과 소식을 공유하지만, 비공개 계정도 운영해 친밀도가 아주 높은 친구들과 별도의 소통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비공개 계정을 공유하지 않은 친구들이 그 존재를 알게 되면서 서운함을 느낀 것이다.

A 씨는 인스타그램 스토리 또한 구분해서 올린다고 했다. 그는 “평소에도 모두에게 공개가 가능한 일상을 다른 제한 없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지만, 남자 친구와 함께하는 일상이나 개인적인 내용은 인스타그램 친한 친구 설정 기능을 통해 몇몇 지인에게만 공개한다”고 말했다.

'트친', '인친', '실친' 등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인덱스 관계 (c)김신영 기자
'트친', '인친', '실친' 등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인덱스 관계 (c)김신영 기자

SNS와 커뮤니티 사용이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인간관계 관리법’이 떠오르고 있다.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해지고 관계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방식이 생긴 것이다. 서울대 소비 트렌트 분석 센터가 집필한 <트렌드 코리아 2023>에 따르면, ‘인덱스 관계’라 불리는 이 방식은 수많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그에 색인을 붙여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현대인의 관계 맺기를 일컫는다. 소수와 깊은 우정을 쌓았던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다.

<트렌드 코리아 2023>에 따르면 인덱스 관계는 총 3가지의 단계를 거친다. 시작은 ‘만들기’ 단계다. SNS와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목적에 맞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동시다발적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이어지는 ‘분류하기’ 단계에서는 형성된 관계들에 라벨을 붙인다. 본인 기준에 맞춰 ‘친함’의 정도를 분류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구분 짓는 것이다. 마지막 ‘관리하기’ 단계에서는 불필요한 관계를 정리하기도 하고 '친함'의 정도를 조절하는 등 라벨을 반복해서 떼고 붙이며 관리한다.

실제로 ‘인덱스 관계’ 방식을 사용하는 B(사회복지학, 22) 씨는 친밀도에 따라 소통 매체를 분류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인은 인스타그램 DM(Direct Message)으로 소통하고, 카카오톡은 주로 학과 단체 소통이나 아주 높은 친밀도를 가진 몇몇 친구들과만 이용한다. 일상 외 취미 생활과 관련한 소통은 트위터를 통해 이뤄진다.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애니메이션을 주로 다루는 계정을 각각 생성해 같은 관심사를 가진 ‘트친(트위터 친구)’과 정보를 나누는 것이다. B 씨는 “내가 생각하는 관계의 특성에 따라 소통하는 매체를 분류하는 것이 여러 사람과 소통하기에 편리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인덱스 관계의 원인으로는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SNS 활성화가 꼽힌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대인 커뮤니케이션 비중이 급감하면서 SNS 경험 기회도 자연스레 증가한 것이다. C(경제학, 20) 씨는 “코로나19 시기에 대면 수업이 적어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며 “그 시기 동안 비대면으로 사람을 사귀는 게 익숙해지고, 온라인에서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관계마다 분류를 짓고 ‘자기 노출’을 조절하는 것은 인간 심리에서 당연하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설선혜(심리학) 교수는 “SNS 기능을 통해 ‘자기 노출’ 조절이 더 용이해졌고, 사람들은 목적 달성을 위한 피상적인 모습만 공유할 수 있게 됐다”면서도 “행복의 요소인 진심이 맞닿아 교류하는 일체감은 적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덱스 관계의 장점은 △인적 자원 확대 △사회적 자본 확대 등이다. 예전보다 적은 시간·비용을 들여 인간관계를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범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는 “넓어진 스펙트럼의 관계는 다양한 사회적 자본을 형성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며 “다양한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사회적 효능감이 증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설 교수도 “자신의 목적에 맞는 인적 자원을 쉽게 확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인덱스 관계로 인한 문제점이 생기기도 한다. 관계마다 목적과 분류가 있기에 긴밀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수월하지 않고 회의감이 들기 때문이다. A 씨는 “서로 자신만의 ‘친함’ 정도가 있다 보니 내 친구와 나의 분류가 다르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며 “관계를 쉽게 포기하는 경향도 생기게 된 것 같아 어쩔 수 없지만 씁쓸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약한 연결고리를 특징으로 하는 관계에서는 ‘선택적 회피’가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한다. 특히, 다소 불편한 사회∙정치적 주제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회피하게 된다. 김 교수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는 이질적인 메시지에 쉽게 노출되어 자기 생각과 비슷한 사람들과 의도적으로 소통하려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며 “자기 생각과 다른 의견에 곰곰이 생각할 기회가 부족해질 수도 있어 우리는 이 점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인덱스 관계로 인한 선택적 회피는 사회 문제까지 일으킬 수 있다. ‘공유’ 관계보다 주고받음이 명확한 ‘거래’ 관계의 비중이 커진단 것이다. 설 교수는 거래 관계에 대해 “자기 효능감은 증가할지 모르지만, 자신에게 당장 손해가 된다면 관계를 쉽게 끊어버리는 현상들도 함께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선택적 회피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경우 ‘끼리끼리’가 강화된 커뮤니케이션 구조가 만들어진다”며 사회의 양극화를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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