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입학하던 1998년 우리학교에는 해방터라 불리던 곳이 있었다. 인문대와 인문대교수연구동이 리모델링되기 전, 인문대와 연구동 사이에 위치해 있었던 곳이었다.

지금은 제2공학관 쪽으로 건물이 들어서 있지만, 그 당시에는 건물이 없었기 때문에 해방터에 햇빛이 아주 잘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공강 시간이나 강의 시작하기 전, 모든 강의가 끝나고 난 후에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햇볕이 잘 드는 봄날이면 거기서 햇빛 보려고 벤치에 누워 있기도 했다. 인문대 뒤편에 누군가 자보를 붙이면 그 내용에 대해 토론을 벌이기도 했었고, 강의가 끝나면 아이들이 그곳에 모여 강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선배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거기였고, 후배들과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곳도 거기였다. 그곳은 휴식의 장소이자, 토론의 장소였고, 개인의 이야기를 할 수 있던 곳이자, 공적 사안을 결정할 수 있는 곳이었다.

15년이 지나 필자가 조교로 있는 2013년, 그곳에 사람들이 없다. 양지바르던 곳에 건물이 들어서면서 높은 계단이 벤치를 대신하고 있다. 그리도 청명하게 내리 쬐던 햇볕도 보이지 않으며, 그 많던 자보도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도 보이지 않고, 아이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목소리는 가상 세계로, 카페로, 강의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그 공간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점점 사적 목소리가 되어갈 뿐, 발언은 나오지 않는다.

교육과 연구가 꼭 강의실이나 연구실에서 이루어진다는 법은 없을 것이다. 말을 통해 ‘우리’의 문제를 결정하는 것도, 말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결정하는 것도 교육이고 연구이다. 토론이 없는 활자 속에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순한 지식일 뿐이다. 활자를 자기화하는 것도 말에 의해서이며,‘ 우리’를 만들어 내는 것도 말에 의해서이다. 말이 없는,‘ 우리’의 문제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단지 시대 변화의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공간을 조금씩 사라지게 한 것은 이미 그것을 경험했던 우리들이기도 하다. 그 공간의 소중함을 잃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우를 범한 것도 우리들이고, 눈앞의 목표에만 신경을 쓰면서 주위의 작지만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아왔던 것도 우리들이다. 

우리학교에 있었던 15년 동안 필자가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조교라는 직을 맡고 있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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