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 어린이는 지금 당장 건강해야 한다. 어린이는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 (ENA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9화 중)

작년 여름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던 인기 드라마에 나온 선언문이다. 방영 당시 출연했던 배우와 더불어 그 스토리까지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에피소드이다. ‘어린이 해방본부 총사령관’이 당최 무엇을 어떻게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으나 꽤나 근사한 직책처럼 들린다. 어떻게 보면 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하고, 건강해야 하고, 행복해야 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저 대사는, 그조차 어른들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드라마에서 상기 선언문을 만든 등장인물인 ‘방구뽕’도 어린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선언문 제정 주체가 어른인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서, 이후 우리에게 미친 파급력을 생각했을 때 분명 ‘지금 당장’이 사회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를 건드린 건 분명하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지난해 12월부터 진행 중인 ‘포스트모던 어린이’ 전시는 ‘어린이’를 어른의 시각이 아닌 존재론적 관점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모던’과 ‘포스트모던’의 정의와 범주가 다양하다 못해 불확실하기까지 하지만, 전시는 어린이가 훈육의 대상이 되는 상황을 ‘보편타당’이란 개념에 근거한 ‘근대’의 연속으로 간주하고 이를 비판하고 있다.

올해는 ‘1923년 어린이선언 100주년’이기도 하다. 10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지금, 그만큼 우리의 세상은, 우리의 어린이들은 더 행복해졌을까? 1923년 어린이날 기념 선전문에 함께 실린 ‘소년운동의 선언 세 가지 조건’의 첫 번째, 세 번째 항목을 읽고 ‘포스트모던 어린이’ 전시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한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 (출처: 한국방정환재단 https://children365.or.kr)

‘배우고 놀기에 족한’ 사회적 시설인 ‘미술관’이, 어린이를 ‘완전한 인격체’로 보고, 윤리적 압박을 하지 않는 ‘전시’를 제공하자는 위의 취지와 이번 전시의 의도가 부합되는 면이 있다.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기 때문에 이는 현재의 청년들 또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캠퍼스의 로망이라는 건 찰나이고 내가 누구인지를 고찰하고 학문을 탐구하는 시간을 가질 새도 없이 내려야 하는 빠른 결단, 그 불확실성을 위해 해야 하는 준비들, 끊임없는 조급함, 그리고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들…. 이러한 일련의 프로세스는 분명 내 안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온 잣대로부터일 것이다. 보편타당,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나도 그래야 한다는 건 결코 진리가 아님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것을 외면하기 또한 쉽지 않다.

‘포스트모던 어린이’ 전시를 통해 어린이에 본인을 투영해 보고, 나 자신에 대한 정의를 다른 사람이 내릴 필요가 없음을(애초에 정의라는 것을 꼭 내려야 하냐는 의문이 있다)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이 또한 근대적인 강요나 압박이 될까 하는 기우가 있지만, 이 전시가 여러분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도톰하게 만들 수 있기를, 경험의 아주 조그마한 파편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 딱 그 정도이다.

※‘포스트모던 어린이’ 전시 정보: 1부 불안한 어린이를 위해 조용한 자장가를 불러주지 마세요(2022. 12. 17. - 2023. 4. 23.) / 2부 까다로운 어린이를 위해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지 마세요(2023. 5. 5. - 2023. 8. 27.) / 장소: 부산현대미술관 지하1층 전시실

부산현대미술관 최영민 학예연구사
부산현대미술관 최영민 기록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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