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등교육지원 특별회계 신설 추진
-초·중등교육 예산 활용 두고 교육계 충돌
-고등교육계 "재정교부금 절실한 상황"

학령인구 감소에 물가 상승까지 덮치면서 고등교육이 위기에 놓였다. 뒤늦게 정부가 고등교육을 지원하기로 했으나 초·중등교육 예산을 활용하겠다는 방안에 전국적으로 반발이 일고 있다.

지난 11월 15일 교육부와 기획재정부는 합동 브리핑을 열고 총 11조 2,000억 원 규모의 ‘고등·평생교육 지원 특별회계(이하 특별회계)’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특별회계는 기존의 대학 경쟁력 강화 관련 사업에서 이관된 8조 원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중 교육세 3조 원 등을 활용해 편성된다. 교육세는 유·초·중등 교육에만 제공돼 왔다.

특별회계를 신설하려면 국회에서 관련법이 먼저 통과돼야 한다. 지난 9월 2일 국민의힘 이태규(교육위원회) 의원 등 14명은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법 제정안’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일부개정안’, ‘국가재정법 일부개정안’ 등 고등·평생교육 지원 관련 3개 법 제·개정안을 발의했다. 3개 법이 모두 통과되면 특별회계 신설 및 대학에 재정 지원이 늘어날 전망이다. 이 의원은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법 제정안’ 원문에서 “대학은 10년 이상의 등록금 동결, 학령인구 급감 등 재정난 심화로 변화를 위한 동력을 창출할 여력이 없는 실정”이라며 “고등교육 재정의 획기적 확충과 유치원, 초·중등학교와 고등교육에 이르는 인재양성 생애주기 전반의 투자 불균형 해소를 도모하려는 것”이라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교육단계별 학생 1인당 공교육비의 OECD 평균과의 격차. [출처: 국제지표를 통해 본 고등교육재정 투자 현황]
교육단계별 학생 1인당 공교육비의 OECD 평균과의 격차. [출처: 국제지표를 통해 본 고등교육재정 투자 현황]

■대학 공교육비 수준, OECD 하위권

우리나라가 고등교육에 투자하는 비율은 다른 선진국들보다 낮다. 지난 11월 7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발표한 ‘국제지표를 통해 본 고등교육재정 투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준 우리나라 학생 1인당 고등교육 공교육비는 $11,287로 OECD 평균인 $17,559보다 적고 38개국 중 30위 수준이다. 학생 1인당 고등교육 공교육비의 정부부담 공공재원 투입액은 $4,323으로 38개국 중 32위다.

초·중등교육에는 공공재원이 많이 투자되고 있다. 우리나라 고등교육 단계 정부부담 공공재원은 $4,323로 OECD 평균인 $11,589의 37.3% 수준이지만 초·중등교육 단계는 $9,617로 $13,749인 OECD 평균의 143% 수준이다. 초·중등교육보다 고등교육에 공교육비를 적게 투자하는 국가는 OECD 국가 중 우리나라와 그리스밖에 없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관계자는 “대학교육의 경쟁력은 곧 국가경쟁력이라고 할 만큼, 대학은 미래 사회에 대응하고 사회와 산업이 요구하는 수요를 뒷받침하는 인재 양성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미래사회를 이끌 핵심인재 양성을 위해 고등교육에 대한 절대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돈 쌓이는 초·중등교육

이에 초·중등교육에만 제공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수가 늘면서 교부금 액수는 증가하고 있지만 학령인구가 감소하기에 비율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내국세의 20.79%를 고정적으로 끌어오는데, 세수가 늘면서 교부금 액수도 계속 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81조 3천억 원으로 지난해 60조 3천억 원보다 약 26% 증가했으며, 1,528만 원인 학생 1인당 교부금과 함께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편, 통계청이 지난 2019년 발표한 중위기준 인구추계결과에 따르면 학령인구는 2020년 546만 명에서 2030년 426만 명으로 22% 감소할 예정이다.

감사원도 현 교부금 제도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감사원은 지난 2020년 5월 ‘지방교육재정 효율성 및 건전성 제고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학생 수가 감소하는 가운데 실수요와 괴리된 채 재정 투입만 늘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잉여금이 증가했다”고 전했다. 감사원은 지난 10월 31일부터 11월 25일까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 운용 실태를 점검하고자 교육부를 상대로 실지감사(현장감사)를 실시했다.

시도교육청이 설치하는 기금 수와 조성액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지난 4월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22 대한민국 재정’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보유한 기금은 44개로 누적 조성액에서 사용액을 뺀 현재액이 총 5조 3,751억 원에 달했다. 이는 2020년 현재액(2조 8,948억 원)보다 86%, 2017년 현재액(3,207억 원)보다 16.8배가량 증가한 것이다. 2021년 기준 기금의 90%는 통합재정안정화기금과 교육시설환경개선기금로 구성됐다.

고등 교육에 재정 지원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지난 2004년부터 2020년까지 국회에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안이 11차례 제안됐으나 모두 임기 내 의결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현 21대 국회에도 이 의원의 법안 외에 더불어민주당 서동용(교육위원회)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안, 더불어민주당 유기홍(교육위원회)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대학균형발전특별회계법안이 있다. 서 의원의 법안은 고등교육재정교부금이 국내총생산의 1.1%를 유지할 수 있도록 내국세분 교부율을 조정하는 내용, 유 의원의 법안은 정부가 5년간 대학균형발전특별회계를 운영해 대학의 소재지, 규모와 상관없이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10월 24일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수호 공동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제공]
지난 10월 24일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수호 공동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제공]

■전국 교육감 “절대 반대”

그러나 초·중등 교육계는 교육세의 일부를 고등 교육에 사용하겠다는 정부 계획에 반발하고 있다. 초·중등 교육계도 여전히 재정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지난 9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교육감 특별위원회’를 구성한 데 이어 지난 10월 24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를 포함한 132개 교육단체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수호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출범시키고 범국민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공대위는 지난 11월 15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 총 10만 788명의 서명을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 11월 7일 노옥희 울산시 교육감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맞춤형 교육과 급변하는 미래 사회에 대비하는 미래교육 기반 조성을 위해 유·초·중등 교육예산은 오히려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1월 10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이하 협의회)는 ‘교육교부금 쟁점 분석 및 미래교육 수요 전망 보고서’를 발표하며 향후 3년간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서 미래교육 실현에 62조4000억 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초·중등교육계가 미래교육 수요에 맞춰 △교육복지 확대 및 정서회복 △교육여건 개선 △미래교육 기반구축 △포스트코로나 학교 공간 재구조화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협의회는 교육청마다 기금 조성액이 증가한 이유와 관련해 “중앙정부 예산의 증가로 증액된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을 회계연도 중에 예산을 편성하면 사업 기간 부족으로 상당 부분의 예산이 이월·불용이 될 것”이라며 “부득이하게 교육기금으로 운용한 까닭”이라고 보고서에서 설명했다.

■대학 위기는 현실

우리 대학을 포함한 전국 대학의 재정난은 심각해 투자가 절실한 상황이다. 우리 대학 재무과 관계자는 “일반 재정으로 들어올 수 있는 구조가 개편되지 않는 이상 대학의 여건은 계속 열악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일반 재원 목적으로 대학의 재정 여건을 건전화할 수 있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이 정말 필요한 시점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관계자도 “현재 고등교육 관련 정부 재정 지원은 법적 기반 없이 매년 사업비 편성 방식으로 불안정하고 제한적인 재원 확보 구조를 이루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미래사회를 이끌 핵심인재 양성을 위해 고등교육에 대한 절대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교육세를 끌어오는 방안이 실현된다면 초·중등교육의 타격이 예상된다. 교육계는 초중등 예산을 일부 떼어 대학에 지원하는 방안은 근본적 해법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박남기(광주교대, 교육학) 교수는 “초·중등교육 예산이 여유롭다고 하지만 막상 보면 그렇지 않다”며 “교육세법과 같은 고등교육에 대한 특별 예산을 편성하여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홍창남(교육학) 교수도 “단기적으로는 교육세 활용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부족해지는 초·중등교육 예산은 국가의 별도 지원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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