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 일기>를 읽고

 

지난해 12월 대선의 열기는 뜨거웠다. 모든 국민들은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한 표의 권리를 행사했고 그 결과로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이러한 막중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국민이라 할지라도 당선된 대통령이 각국 정상회담에서 무엇을 이야기하였는지 또한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서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는 달랐다. 임금이 누구를 만났는지는 물론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도 모두 기록되고 공개됐다. 왕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사관은 목숨을 걸고 써내려갔다. 물론 아무리 권력이 강한 왕일지라도 사관이 쓴 내용을 다시 고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왕의 모든 것을 샅샅이 보여주는 것이 <<승정원 일기>>이다.

이 <승정원 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조선왕조실록>과 비교하여 볼 때 가치가 더욱 두드러진다. <조선왕조실록>은 편집자들이 취사선택하여 가공한 2차 자료인 반면, <승정원 일기>는 당시의 상황을 현장에서 바로 기록한 생생한 1차 사료인 것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조선시대 선조들의 기록정신을 바탕으로 288년간의 천문 기상 정보와함께 조선시대 언어, 정치,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승정원 일기>를 읽으면 흡사 그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아주 자세하게 기록되어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보다 5배나 많은 방대한 양인데다 조선후기의 288년간의 기나긴 기록을 읽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그래서 <승정원일기, 소통의 정치를 논하다>는 이러한 난점을 해결하면서 <승정원 일기>의 방대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인상 깊게 취합하여 전해준다. 국왕의 하루일과를 비롯해 승정원일기에 투영된 조선의 여러 계층의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들려주고 있다. 왕실뿐만 아니라, 양반이나 상놈들의 풍속 등을 통해 본 조선시대의 사회상, 기아나 노인에 대한 정책과 과거에 급제한 관리들이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는 모습 등의 조선의 관심사가 흥미롭게 그려진다. 이 <승정원일기, 소통의 정치를 논하다>한 권으로 조선왕조의 전모를 읽을 수 있다고 할 만하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승정원일기의 자료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방대함과 난해함때문에 사람들에게 보다 쉽게 전달되고 있지 못하는 점을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 사료적 가치가 높은 승정원일기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결코 이득이 되는 일은 아니다. 계속해서 승정원일기 전산화 작업과 번역이 진행되고 있고 하루 빨리 완료된다면 사람들 모두 손쉽게 읽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선조들이 가꾸어온 수준 높은 기록문화의 전통을 오늘에 되살리는 작업들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지만 우리 DNA 속에는 선조들에게 물려 받은 기록정신의 힘을 갖고 있으니 승정원일기에 대한 인식과 활용이 다양해지고 풍부해지기를 기대해본다. 

흔히들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이러한 자료를 통해서 밑거름 삼아 우리 미래를 대비해나가고 개척해가면서 더 나은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지난 2010년 허성도 서울대 중문과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그 곳에서 허성도 교수는 우리 기록정신의 가치에 대해 역설했다. 장장 288년의 기록 속에는 단순한 그날그날의 기록이 아니라 백성들을 생각하고 염려하는 임금의 고뇌와 노력, 조선이 500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담겨져있다. 우리는 선조들의 기록정신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승정원일기를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아끼고 보존해 나가길 진심으로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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