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태원에서 안타까운 참사가 있었다. 핼러윈을 맞이해 좁은 골목길에 인파가 모이면서 압사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고 발생 하루 뒤 곧바로 일주일간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다. 대부분의 피해자가 필자와 같은 20대라는 사실이 더욱 비참하고 안타까웠다.

11월 3일 기준 156명이 숨지고 187명이 다쳤다. 어제까지 내 곁에 있던 친구가, 들뜬 얼굴로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남기고 나간 자식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런데도 일부 사람들은 막말을 쏟으며 사안의 핵심을 보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틀간 연락 두절인 친구를 두고 노심초사하는 이에게 ‘놀러 간 게 잘못’이라며 악담을 퍼붓는다. 한 국회의원은 사고 직후 상대 정당의 이슈를 끌어올리며 정치 여론을 잡으려다 몰매를 맞고 해당 글을 삭제하기도 했다.

모자이크 처리조차 되지 않은 영상들이 SNS에 떠돌아다닌다. 그 아래에는 ‘놀다 죽은 것을 왜 애도하냐’며 도를 넘는 댓글이 이어진다. 의료 현장에 있었던 한 간호사는 심정지 환자가 들어오는 것을 브이로그로 찍어 올려 논란이 됐다. 애도와 위로로 채워져야 할 자리에 가벼운 조롱이 가득하다. ‘놀다가 죽었다’고 죽음이 폄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에게도 타인의 죽음을 평가하거나 왈가왈부할 권리는 없다. 

왜 이런 비극이 발생했나.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사고 발생 당일 이태원역을 이용한 사람은 13만 명가량이었다.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7년~2019년 핼러윈 행사 기간에도 10만 명 안팎의 이용객이 다녀갔다. 마스크를 벗고 3년 만에 정상적으로 열리는 행사여서 많은 인파가 모일 것이라는 예견도 가능했다. 그런데도 당국은 주최자가 없는 ‘비공식 행사’라며 안전 요원 배치를 하지 않은 데다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드라마 '비밀의 숲'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고라는 게 원래 1분 1초마다 매번 계속 발생하지 않습니다. 문제없다고, 괜찮다고 원칙 무시하다가 어느 날 배가 가라앉고 건물이 무너지는 겁니다.” 재난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니 평소 모든 준비를 갖추고 경각심을 가지라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 ‘어른’들은 전혀 다르게 해석한 모양이다. 당장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방치했다. 손쓸 수 없었던 천재(天災)가 아니라, 무사안일주의가 만든 안타까운 인재(人災)다.

어른들이 꼭 잠그지 않은 수도꼭지에 청년들이 익사했다. 늦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런 무시무시한 교훈을 배우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이 156명의 젊은 사람들의 목숨이라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냐”는 CNN 이반 왓슨 기자의 말처럼, 비극을 비극으로만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당국은 이번 사고를 통해 재발 대책 강구에 힘쓰고, 근본적인 구조를 개선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이미 소를 잃었다고 외양간을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일이다.

임하은 부대신문 편집국장
임하은 부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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