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올림픽 메달리스트에게 한 기자가 물었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메달리스트는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건물주가 되는 것입니다.” 이 사례보다 한국사회의 현실을 잘 드러내는 인터뷰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건물주가 될 수는 없다. 모두가 서울대에 갈 수 없듯이, 모두가 공무원이, 교사가 될 수 없듯이 모두가 건물주가 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나는 부산대 앞에서 10년간 카페를 운영한 적이 있다. 배제되거나 소외된 사람들이 모이는 소통의 장소, 배움의 장소, 놀이의 장소를 만들자고 했다. 커피를 팔고, 강연과 공연을 열고, 창작 발표회를 하고, 기타 교실, 시인 학교를 열고, 여러 독서 모임도 열었다. 그러나 10년간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대안을 만들고자 했으나 만들지 못했고, 전망을 밝히려 했으나 캄캄한 절망만 만났다. 달마다 적자를 메우느라 고심하던 나는 몸도 적잖이 상했다. 그래도 한 가지 성취한 것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만나 서로 친구가 됐다는 사실이다.

카페 초창기 많은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카페를 찾아왔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10년 전의 학생들도 미래에 대한 불안과 취업 걱정에 시달리고 있었다. 대학에 가면 끝날 줄 알았던 경쟁은 입시에서 취업으로 바뀌었을 뿐 끝나지 않는다. 설사 운이 좋아, 스펙이 좋아, 능력이 있어서 취업을 했다고 하더라도 직장에서 도태당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경쟁은 계속된다. 작금의 체제 아래서는 그 누구도 죽을 때까지 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은 없다. 다만 ‘공정한 경쟁’이라는 환상 아래서 끝없이 탈락하거나 실패하는 삶, 그런데도 다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꿈을 꾸며 ‘경쟁’을 법칙처럼 받아들이는 삶이 있을 뿐이다. 경쟁에서 이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경쟁 자체를 없애는 길밖에 없다. 그것은 건물주가 아닌 사람들, 서울대에 갈 수 없었던 사람들만이 욕망할 수 있는 ‘특권’이고, 체제의 요구와는 ‘다른 꿈’이다. 부산대학교에서, 부대 앞 주점 거리에서 그런 꿈들이 꿈틀거리기며 피어오르기를 바라는 나는 비현실적인 망상가일까.

앞에서 나는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실패의 장소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이, 소외된 사람들이, 건물주가 아닌 다른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만났다. 내게 희망이 있다면 바로 그런 것이다. 주류, 체제, 자본(가)이 요구하는 ‘경쟁’에서의 승리가 아닌 다른 꿈, 다른 희망, 다른 미래를 꿈꾸는 일, 다 함께 실패하는 일말이다. 다 함께 실패했는데도 이상하게도 더 뿌듯해지고, 더 충만해지는 그런 일말이다. 실패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세상이 더 따뜻해지고 더 살 만해지는 그런 이상한 일 말이다.

나는 그런 일이 중앙과 서울이 아니라 지역에서, 부산에서, 부산대에서, 부산의 대학생들 속에서 일어났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세상을 이따위로 만든 부끄러운 기성세대지만 끝으로 변명 같은 한마디를 하자면, 여전히 다른 꿈을 꾸는 사람들이 방방곡곡 곳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이 당신들에게도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

황경민 작가
황경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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