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어떻게 하나요?"

주변에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면, 거의 반드시 듣는 질문이다. 특히,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인 것 같기도 하다. "결혼할 사람을 보면 정말 느낌이 딱 오나요?"라고 묻기도 하고, "남은 인생을 결정하는 선택인데 그걸 어떻게 해요?"라며 막막해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결혼이라는 게 적당한 나이가 되면 자연스럽게 하는 일에 가까웠다면, 요즘에는 할지 말지부터 고민되는 문제가 되었다. 결혼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더라도, 몇 살쯤에 할지도 천차만별이다. 결혼 적령기라는 개념이 과거보다 희석되면서, 어찌 보면 선택은 더 어려워졌다. 결혼에 대한 강요와 압박이 줄어들수록, 결혼이 순수한 선택의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로 가까운 관계나 소개에 의지해 짝을 찾아야 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선택의 폭도 무척 넓어졌다. 소개팅 앱이나 각종 동호회, 모임 등은 끊임없는 '기회의 장'으로 펼쳐져 있다. 그 중 어디에 '최고의 짝'이 있을지 알 수 없다. 어떤 사람과 결혼을 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가도, 다른 곳에 더 근사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기대를 완전히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그 와중에 최근 청년 세대는 결혼을 '시작'이 아니라 '완성'으로 여긴다. 과거에는 결혼이란, 단칸방에서 시작하여 생활전선을 이어가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최근에 결혼이란, 로맨스의 완성에 가깝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행복의 이상으로, 일종의 천국으로 들어서는 게 결혼이어야 한다는 관념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관점은 결혼에 대한 선택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완벽한 이상에 대한 강박을 느낀다는 것, 이 두 가지는 요즘 세태의 핵심이기도 하다. 선택의 어려움 때문에 결국 그 무엇에도 전념하지 못하고 허송세월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도처에서 들려온다. 어느 하나에 몰입하지 못하는 ADHD적인 성향이 시대적인 질병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완벽한 이상 또는 이미지에 대한 문제도 광범해지고 있다. 인스타그램 속에 완벽한 자기 모습이나 삶만을 전시하는 일명 '절망이 없는 인스타그램' 현상이다. 특히, 이런 이미지 전시 문화가 만연하면서, 타인들의 전시된 삶을 보고 내 삶을 불행하다고 느끼는 경우들이 많아졌다. 아이러니는 그에 따라 나도 완벽한 삶만 전시하고, 타인들이 불행하게 느끼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결혼을 대하는 일이나 이 시대를 통과하는 일이나 핵심은 같다. 그것은 무한한 선택 가능성과 싸우고, 완벽함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는 일이다. 배우자나 직업, 살 곳을 선택하거나, 오늘 저녁이나 주말에 할 일을 선택하는 일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나머지 선택지들을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다. 오늘 저녁 읽을 책 한권을 위해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웹툰, 커뮤니티 유머 게시판을 버리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고 그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나머지 가능성을 끊어내야 한다.

그리고 완벽한 삶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 누구도 완벽한 행복 속에 있지는 않다. 완벽해 보이는 것들 이면에는 항상 복잡하고 어지러운 삶이 놓여 있다. 삶은 완성을 지향하기 보다는, 불완전함을 견디면서도 그 속에서 나름의 가치를 매번 찾아가는 여정이다. 결혼 또한 완벽한 삶으로 들어서는 일이 아니라, 불완전한 두 사람이 함께 애써 삶을 시작해보고자 마음먹는 일이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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