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이 지나갔다. 광장에는 깃발과 구호가 난무하고 이들의 대열에 최루탄이 뿌려지기도 했지만 식순에 따른 의전 치르듯‘ 무사히’ 끝났다. 대개의 역사적 기념일이 최초의 역동성을 차츰 상실하고 그 자리를 박제된 상투성으로 대신하듯, 뜨거운 신념도 냉철한 정책도 찾기 힘든 행사판이었다. 123년이나 흘렀으니 이제는‘ 노동절마라톤대회’를 당연하게 여겨도 좋을 만큼 우리는‘ 진보’한 사회에 살고 있는가. 광장이건 마라톤대회건 어느 쪽에서도 부름 받지 못한 이들이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일해야 했던 그 날, 이제 그 숫자가 셋 중 하나 꼴이라는 나라에서, 그러니‘ 너’아니면 ‘나’의 이름이 ‘비정규직’일 가능성이 치솟는 시절에‘ 당신들의 축제’를 바라보는 일은 피곤하고 또 씁쓸하다.

시대적 후진성 혹은 역사적 비극을 표상하는‘ 이름’이 있다.‘ 노예’나‘ 원주민’이 그랬고,‘ 여성’과‘ 동성애자’가 여전히 그러하며,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빨갱이’ 따위가 그 예들이다. 이 이름들은 아감벤이 유대인과 난민을 통해 지적했듯‘ 배제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포함되어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지배적 질서 혹은 기득권의 안녕을 위해 집단 내 약자를 희생물로 삼아온 정치 논리가 여기에 있다. 너 아니면 나의 이름,‘ 비정규직’이란 이름도 정확히 그 지점에 놓인다. IMF이후 생겨나 그 목록에 합류하더니 이제는 그 많은 파생어조차 친숙해진 지경이다. 기간제, 일용직, 임시직, 계약직, 시간제, 파견, 도급, 용역, 사내 하청 등의 숱한 갈래는 이 땅을 거머쥔 자본주의의 악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OECD조차‘ 임시 근로자(temporary worker)’정도로 밖에 규정하지 못한‘ 비정규직’을 이 나라의 경영인들은 발빠르게 개념 정리하여 고용 시장에 써먹었다. 그러므로 OECD내 비정규직 비율 1위는 기득권의 굳건해진 안위와 한층 더 절박해진 너와 나를 한꺼번에 드러내는 암담한 이정표다.

청년들은 더 심각하다.‘ 학문의 전당’에서 ‘취업 양성소’로 전락한 대학을 개탄하는 목소리는 가히 설화적이다. 계약직이라도 일자리를 구할 수만 있다면 행운이지만 그마저 버거운 청춘들은 몸에 불을 붙이거나 목을 매거나 옥상에서 뛰어내린다. 정규직 전환이라는 ‘희망고문’에 시달리고 열악한 처우를 견디다 못해 끝내 목숨을 버린 이들의 이름은 인턴이거나 도대체가 낯선 촉탁계약직이거나 보조작가이고 시간 강사였다. 그 맞은 편 어쩌면 같은 편에, 착취를 제도화한 경영진이 있었고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있었고 스타 출연자가 있었고 교수들이 있었다.‘ 포함된 채 배제된’ 그들을 희생양 삼은 이‘ 제의’의 집전자는 그러므로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이 아니라 자신의 안락이 타자의 고통에 빚지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는 둔감하고 부도덕한 기득권층이다. 특수한 상황을 강변하며 당연히 나눠야 할 것을 나누지 않는 자본가가 123년 전에도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해고통보를 받은 지 자그마치 1895일만에 기륭전자 비정규직 10명이 복직했다. 유흥희 기룡전자 분회장은 말했다. “ 6년을 싸우고 2년 6개월 동안 생계를 포기한 채 기다렸던 것은 이 투쟁이 개인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늠할 수 없는 세월과 고통 앞에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 기룡전자 노동자들이 그렇듯, 전태일과 123년전 노동자들이 바란 세상도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님을 새길 따름이다.‘ 비정규’라는 이 시대 흔해빠진 이름을 매만지며 노동절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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