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시대에 학보사를 왜 하냔다. 맞다. 달라도 너무 다른 시대다. 1·2학년은 교내 활동과 대외 서포터즈에, 3·4학년은 학점 관리와 인턴 지원에 온 신경을 쏟는다. 선택의 기준은 오로지 취업을 위한 스펙에 도움이 되느냐다. 적은 노력으로 스펙 한 줄을 채울 수 있는 '가성비' 활동을 찾느라 저마다 열심이다. 

학보사는 △취업에 큰 도움이 되는가 △스펙으로 차별성이 있는가 △적은 시간이 드는가 중 어떤 조건도 충족하지 못한다. 매주 기사를 내기 위해 △아이템 발제 △취재 △구성 회의 △데스킹 등 수많은 일과를 수업과 병행하기 때문이다. '20XX-20XX 채널PNU 소속 기자' 한 줄과 맞바꾸기엔 너무 가혹한 대가다. 

실제로 전국 대학 언론은 유례없는 최악의 인력난을 맞았다. 수많은 학보사가 존폐 기로에 섰고, 기성 언론은 ‘학보사 폐간 위기’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우리 ‘부대신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10명이 채 안 되는 인원으로 신문 발행을 강행하다 결국 중단됐다. ‘부대신문 거기 망했다더라’ 내부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리저리 떠도는 말만 만연해질 즈음, 필자는 부대신문에 입사했다. 신문사를 지키고 있던 기자가 한 명도 없을 때였다.

모든 사정을 알고도 입사한 것은 부대신문을 살려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합격도 전에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그야말로 신입의 당돌한 패기였다.

첫 아이템 취재를 위해 대학본부에 전화했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필자 자신을 ’기자‘로 소개하는 것이 쑥스러웠고 날선 말투가 돌아오면 질문을 이어가는 것도 어려웠다. 인물 인터뷰 기획을 처음 맡았을 땐 취재원 연락부터 질문까지 혼자 해야 한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온갖 사이트를 뒤져 연락처를 알아내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인터뷰해 달라며 메시지를 보내는 일까지. 이곳이 아니라면 결코 경험하지 못할 일들이었다. 필자는 그렇게 '숙련의 시간'을 거치며 기자로 단련돼 갔다.

다른 일을 병행할 수 없을 정도로 활동 시간이 길었지만 억울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에 익숙해지자 시간을 더 쏟아서라도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연락이 없으면 몇 번이고 요청해 답변을 받았고, 내키지 않는 사람에게 웃으며 부탁하는 방법도 알게 됐다. 인터뷰 거절은 예삿일이었다. 펑크가 나면 안 되니 더 좋은 취재원을 찾아야 했고, 이곳저곳 물어보는 과정에서 소통 능력과 용기를 배웠다.

끈끈한 인적 네트워크 역시 따라왔다. 편집국의 저녁을 함께 보내는 동료 기자들, 인터뷰가 끝나고 SNS 친구가 된 동문 선배, 방문이 고맙다고 선물을 챙겨 주신 교수님까지. 학보사라는 연결 고리가 아니었다면 스쳐 지나가는 데 그쳤을 것이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요즘 같은 시대기 때문에 학보사 기자를 한다고. '스펙 쌓기'를 위한 경쟁과 각박함만 남은 대학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고.

임하은 부대신문 편집국장
임하은 부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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