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하지 않은 자신의 권리를 정당한 것으로 둔갑시키려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 위한 수단은 다름 아닌 ‘교과서’다. 그것도 학생들에게 삶의 지침이 될 역사 교과서를 가지고 ‘장난질’하고 있다. 국가는 이들을 옹호하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잘한다고 박수 쳐주며, 이에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계속 이러면 너희 교과서 취소할 거다’며 협박까지 일삼는다. 일이 진행되면 될수록 가관이다.

필자는 부끄러운 마음을 안고 기사를 기획했다. 나라의 역사를 ‘쪼대로’ 바꾸고, 심지어 이를 교과서로 사용하는 것마저 용인하게 되면 국가적인 망신이라는 생각에서다. 이웃 나라의 교과서 왜곡을 손가락질하면서 정작 자기 나라의 교과서를 왜곡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교과서로 공부하게 된다면 일본인의 ‘타케시마와 와가쿠니노 료-도다(다케시마는 우리 영토다)’라는 말에도 반박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교과서를 써내려가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투사들을 깡그리 무시해버린다. 국가의 주권 침탈은 성장을 위한 도움으로 둔갑하고, 인권유린과 학살을 일삼은 독재자는 한국이라는 ‘기업’의 성공적인 CEO로 표현된다. ‘팩트’가 아닌 ‘팩션’이 돼버린 것이다. 이들을 옹호하던 한 취재원은 오히려 “ 역사 인식이 균형을 잡게 됐다”며 기뻐했다.

사실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걱정은 기우일지도 모른다. 이들이 장난질한 교과서가 너무 형편없기 때문이다. 교과서 사본을 살펴보던 필자는 피식 웃고 말았다. 학자라는 사람들이 집필했다고 보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졌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진을 수록하고, 역사가 아닌 유치한 잡설을 끄적거렸다. 곳곳에 보이는 비문은 마치 초등학생의 방학숙제를 보는 듯 했다. 이들의 행태는,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양아치를 숭배하는 개들의 합창’과도 같다. 우리 학생들은 이런 허무맹랑한 ‘개’소리를 믿으라고 강요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다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행히 상황도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취재를 위해 ‘어느 곳에 연락을 해야 하나’고 고민할 정도로 많은 단체가 힘을 모아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명을 받고, 시위도 하며, 전국 곳곳에서 이와 관련된 강연들이 펼쳐지고 있다. 다수의 ‘일반인’도 이에 지지하며 지원사격을 보내고 있다. 국가가 이들을 억누르려 하고 있지만, 그러기에는 터져 나오는 비탄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크다. 아무리 떼를 써도
‘정신이 멀쩡한’ 일반인들은 속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싸움에만 집중하는 사이, 정작 피해 당사자들은 넋을 놓고 있었다. 취재과정에서 의견을 묻기 위해 만난 학생들은 “내용이 다르면 공부하기 불편할 것” 이라는 단편적인 얘기만을 했고, 문제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허다했다. 사태를 자세히 설명하던 필자에게 한 학생이 되물었다. “왜요?”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이유를 설명하려니 꼴이 너무나도 우스웠다. 피해자가 피해자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싸움을 준비하기 전에 한 번 생각해보자. 피해 당사자인 학생들은 영문도 모른 채멍하니 서 있다. 이들을 무시하고 싸움에만 매진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 바라는 일일지도 모른다. 역사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미칠 영향을 걱정하기 전에, 이 상황을 모르고 있는 그들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