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1일부터 2평 이하, 창문 없는 고시원을 서울에 더 이상 짓지 못하게 된다. 고시원은 값비싼 노른자 땅 위에서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기 위해 인간이라면 최소한으로 보장받아야할 권리를 내려놓은 채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했던 공간이었다. 지난 2018119일 발생한 서울의 고시원 화재 사건 이후 4년 만에 서울특별시 건축조례개정안에 따라 창문이 없거나 방이 작은 고시원의 형태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당시 사고로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못하고 경로가 충분히 보장되지 못한 탓이 컸다. 불이 난 고시원 건물은 198212월 건축허가를, 19838월 사용승인을 각각 받았으나 건축 대장에는 고시원이 아닌 '기타 사무소'로 등록됐다. 이 때문에 올해 국가안전대진단 대상에서 빠졌다. 이런 고시원에 사는 사람은 대다수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들이다. 자신의 주거 선택폭이 터무니없이 작은 사람들의 목숨은 그렇게 사라졌다.

지난 2015년 서울시는 사각지대에 있는 고시원들에 스프링클러를 무료로 설치하는 사업을 벌였지만 강제성이 없었기 때문에 이 고시원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못했다. 건물주가 설치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의를 하지 않은 이유는 무료로 설치하는 데에 붙는 조건이었다. 규정상 시의 지원을 받게 될 경우 해당 고시원은 5년간 임대료를 동결해야 했다. 안전보다 이윤을 최우선시하는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건물주는 당연한 선택을 했을 뿐이다. 자본주의는 그렇게 인간의 권리나 삶을 배제한다.

이런 자본주의의 악행을 방지할 수 있는 건 정치라고 생각한다. 정치는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사회적 행위다. 정치는 자본주의가 경제체제로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항상 자본주의의 한계를 고려해야한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개개인의 삶이 좌우되더라도 정치는 개개인의 권리를 최대한 지킬 수 있도록 국가 체제를 구축해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 이야기엔 진짜 정치가 없어 보인다. 심지어 지난 61일 전국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정치가 시민들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는 없고 유권자의 표, 수치 그 자체에만 집중한 이슈들만 쏟아지고 상대 진영에 대한 네거티브 전략만 난무했다. 그 와중에 어딘가에서 여전히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 같이 느껴진다. 한 노동자는 최소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53일간 단식을 했고, 한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가진 장애로는 주체적인 개인으로서 살아갈 수 없는 사회 구조에 항의하며 단식을 하거나 생을 마감했다.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무런 힘을 못 얻고 사그라진 것이다.

지난해 115일에는 전선 작업을 하다가 한 노동자가 사망했다. 더 이전에는 스물셋의 간호사가, 그 이전에는 스물넷의 일용직 노동자가 사망했다. 사회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다면, 아무런 의미도 이유도 없는 갈등과 혐오에 이끌려 다니는 것에 시간을 소비하지 않았더라면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를 목숨들이다.

지난 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하며 정치의 의미를 되새겼다. 우리의 한 표 한 표가 단순한 표가 아니었길 바란다. 누군가 죽어야 바뀌는 것들이 아니라 죽지 않도록 막는 사회를 맞이할 수 있는 표가 되길 바란다.

 
채널PNU 이채현(정치외교학 18) 취재팀(부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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