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다니던 시절, 나는 만학도에 가까웠다. 120여명의 전교생 중에서 나이 많기로 열 손가락 안에는 들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학교 생활의 목표가 있다면, 가능한 한 청춘남녀의 학교생활을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다니는 일이었다. 상대방이 나이가 많건 어리건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며,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고, 누구에게나 적당한 거리를 둔 채 예의를 갖추려고 애썼다. 

그렇게 학교 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 나만 그렇게 하려고 애쓰지 않더라도, 이미 대부분의 20대들도 그렇게 지내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섣불리 형이나 누나, 동생을 나누어 나이 서열을 따지기 보다는 서로 ‘~씨’라고 부르면서 사회적인 간격을 매우 잘 유지하는 것 같았다. 물론, 친해지면 호칭이나 서로간의 거리가 변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아주 예의 바른 사람들이 모인 살롱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서로의 취향이나 생각에 대해 크게 관여하지 않으면서 존중하고, 자랑도 자제하면서, 세련된 관계를 유지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달리 말하면, 최근의 청년 세대는 개인주의적 관계맺기라는 것을 체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함부로 서로에게 자기의 기준을 강요하는 일은 거의 없다. 단 하나의 정해진 정답이 있다고 눈 시뻘겋게 뜨고 주장하는 경우도 잘 없다. 그저 내 생각이든 네 생각이든 그것대로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취존중(개인취향 존중)’ 같은 신조어들이 그런 성향을 잘 보여준다. 최근 온라인에서 많이 쓰이는 ‘반박시 니 말이 맞음’ 같은 말들도 굳이 나와 다른 의견과 일일이 논쟁하며 누가 더 옳은지 따지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여준다. 내 말은 내 말도, 네 말은 네 말대로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청년 세대 사이에서는 ‘~에 진심인 편’이라는 문구가 유행하기도 한다. 각자 몰입하거나 관심 갖는 게 다르고,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는 문화가 이런 문구에서 나타난다. 식물 가꾸기를 좋아하는 누구는 식물에 ‘진심인 편’이고, 글쓰기를 열심히 하는 누구는 글쓰기에 ‘진심인 편’이라는 식이다. 저마다의 세계를 존중하면서 내버려 두는 것, 다른 것을 다른 대로 인정하며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는 문화가 확실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자리 잡는 개인주의 문화의 이면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개인을 존중함과 동시에 개개인과의 거리가 벌어지면서 ‘각자도생’ 문화가 심화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볼 필요도 있다. 나아가 파편화된 개인들이 오프라인에서는 예의 바르게 서로 거리를 유지하며 지낼지라도, 그 반작용처럼 온라인에서는 세상 모든 곳에 악플을 달고 다니는 ‘모두까기 인형’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서로를 존중하는 것 못지 않게 진심으로 서로를 이해하며 관계를 유지해가고자 하는 연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이다. 모든 변화해가는 문화에는 장점과 단점이 함께 있으니 말이다. 변화하는 시대상에서 나름대로 옥석을 가리는 일이 필요한 이유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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