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본지 기자 두 명이 공사가 재개된 밀양 송전탑 현장을 찾았다. 부북면 위양리 인근에는 경찰 버스 9대가 늘어져 있었다. 126번 공사 현장으로 들어가는 등산로 입구에서도 경찰이 길을 지키고 있었다.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들고 길에 들어섰지만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몇 분정도 올라가자 방패를 내세운 경찰 무리가 나타나 기자증을 요구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일부 출입 제한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터라, 출입 거부를 당할까봐 걱정했지만 경찰은 이내 길을 내주었다. 경찰의 임시초소가 이어졌다. 그 사이 공사 현장으로 자재를 수송하는 헬기가 머리 위를 지나갔다. 가파른 산길에 지쳐 옆길에서 잠깐 쉬고 있을 때, 경찰차 한 대가 옆을 지나갔다. 무전소리가 들렸다“. 찾았다” 차에서 내린 경찰은“ 취재 허가를 위해 산 아래에서 담당자와 이야기를 해야 한다”며 하산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산 아래에 내려가자 경찰은 출입할 수 없다며 돌아가라고 했다.“ 공증된 언론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허가 담당 부서와 출입 금지의 법적 근거를 물었지만 알 수 없었다. 필자는 결국 공사현장 근처도 가보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다른 공사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공증된 언론 기관’의 기자들에게만 출입을 허용했다.

어쩔 수 없이 공사 예정지로 이동했다. 평밭마을 인근에는 127~129번 3개의 송전탑이 세워질 예정이었다. 할머니들은 127번 송전탑이 세워질 자리에 움막을 짓고 그 곳에서 생활하고 계셨다. 3년째라고 했다. 주민들은 지쳐있었다. 할머니들은 “한전도 경찰도 다 못 믿겠다”며“ 빨리 끝장을 봤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쉬셨다. 마을 초입을 지키고 있던 할아버지는“ ‘좌익’이 뭔지도 모르는 할머니들에게 좌익 빨갱이라고 하더라”며“ 인터넷에서‘ 저 빨갱이들 다 쓸어버려라’라는 글까지 봤다”고 통탄했다. 지지하는 시민인 척 들어왔다가 정보를 빼내가는 사람들보다, 산 뒤편에서 기습하는 한전보다, 그들을 진실로 힘들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한전은 최근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에 대해 전 국민의 59.6%가 찬성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찬성을 선택하게끔 유도된 설문이라는 비판에도 조사 문항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한전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전달하며 그들의 사업에 타당성을 부여했다.‘ 외부세력’의 갈등조장이라는 보도도 여전하다. 언론을 통해 밀양을 바라보는 국민들 또한 그‘ 외부세력’이라는 색안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가 지난 8일 "종북세력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과 일부 시민단체 등 외부세력이 가세"했다고 발언하면서 ‘외부세력의 갈등 조장’론은 더욱 심화된 상황이다.

한편 밀양시경찰청 홍보팀 관계자는 일부 언론 출입 제한 조치에 대해“ 정확한 언론보도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출입을 허용했던‘ 공증된 언론기관’의 보도는 과연‘ 정확한’ 보도였을까. 부북면 이남우 주민대책위원장은 지난 11일 모든 언론사의 취재를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갑작스런 소식에 전화를 걸자“ 언론이 하도 허위 보도를 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며“ 미안하다”고 전했다.‘ 한전과 경찰은 못 믿겠다’고 말하던 그들은 이제 살갑게 다가오던 기자마저 믿을 수 없게 됐다. 어쩌면 밀양 할머니들을 움막으로 내몬 것은‘ 공증된 언론기관’의‘ 정확한 보도’였을지도 모른다. 덕분에 할머니들은 오늘도 세 평 남짓한 움막 속에서 세상의 차가운 시선과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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