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자연과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

“하늘은 왜 파랗지?”

“나도 새처럼 날 수 있을까?”

“아기는 어떻게 생기는 거야?”

아이들의 질문은 끝이 없다. 대개 자주 묻는 질문들이지만, 때로 답변하느라 진땀 빼는 경우도 있다. 필자는 어린 시절, 땅을 계속 파들어 가면 공룡이 나올 거라는 상상을 했었다. 왜냐고? 이유는 기억 안 난다. 아무튼, 50cm 남짓 땅을 파다가 발견한 것은 땅강아지와 이름 모를 벌레들뿐이었다. 그래도 땅강아지를 발견하고는 친구들에게 얼마나 의기양양했는지 모른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우리는 정말 많은 것들이 궁금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한 번 돌이켜 보시라. 어릴 적 당신이 얼마나 많은 것들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엉뚱한 상상을 했었는지. 분명 그 시절 우리는 모두 과학자였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며 호기심을 하나씩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중고등학교 물리 과목은 알 수 없는 수식들로 가득하고, 수학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송두리째 암기해야 할 거대한 백과사전일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과학은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거 같다. 하지만 혹시 지금이라도 어린 시절 가졌던 자연과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다시 일깨우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이 가을 그들에게 두 권을 책을 권하고자 한다.

 

과학에 대한 열정을 일으키는 책
나탈리 앤지어의 <원더풀 사이언스>는 정말 원더풀한 책이다. 서문에서부터 이렇게 직격탄을 날리는 책은 본 적이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과학을 알아야 한다. (중략) 누구나 과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노래를 부르고 놀이를 하고자 하는 이유와 같다. 이런 것들은 재미있다. 재미있는 것은 좋은 것이다. (중략) 아무튼 당신을 과학을 알아야 한다” 이런 강한 표현에 거부감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막상 본문에 들어서면 누구나 앤지어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 것이다. 한 권의 책에서 통계,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모두를 다루기 때문에, 저자는 결코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재미있는 이야기만 골라서 해준다고 보면 된다. 그중 두 가지만 소개해보겠다. 95%의 정확도로 에이즈 감염여부를 판별하는 체액 검사가 있다. 당신이 검사를 받았는데 양성반응이 나왔다. 그렇다고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당신이 실제 에이즈에 감염되었을 확률은 5%밖에 안 되니까. 앞에서 95% 정확도의 검사라고 하더니 이게 무슨 말이냐고 따질 사람은 책을 보시기 바란다. 조건부 확률의 마술이다. 학과에 당신과 생일이 같은 이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런 우연이! 바로 사귀어 보자고 해야 하는 걸까? 학과 정원이 65명 정도 되면 생일이 같은 사람이 있을 확률은 거의 99%에 가깝다. 흔한 일이니 함부로 뇌화 부동하여 후회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뭔가 이상하다고? 책을 보시라.

세상은 텅 비어 있다. 지구가 모래알갱이만 하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태양은 오렌지 정도의 크기가 되고,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는 6미터 정도 된다. 오렌지 크기의 태양이 부산대 정문에 놓여 있다면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인 해왕성은 인문관 정도에 위치한다. 이 사이에 모래 알갱이만 한 행성들 몇 개 말고는 텅 비어 있다. 자, 이제 태양계를 벗어나면 아예 거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빈 공간이 나온다. 언제까지 비어 있을까? 인문관을 지나, 산 넘고 물 건너 일본 홋카이도 북쪽 끝까지 가면 드디어 첫 번째 별 알파-센타우리를 만나게 된다. 거기까지는 정말 아무 것도 없다. 즉, 부산대 정문을 중심으로 반경 1600km 이내에 오렌지 한 개랑 모래 알갱이 몇 개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셈이다. 정말이냐고? 책을 보시라.

 

과학의 빅 히스토리
과학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면 이제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펴보자.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우주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인간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최근 각광 받고 있는‘ 빅 히스토리’와 도 통하는 바가 있다.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에피소드도 나오지만, 아마 듣도 보도 못한 스토리도 많이 등장할 것이다.

1761년과 1769년, 금성이 태양 앞을 지나가는 천문학적 사건이 있었다. 지구의 여러 위치에서 이 사건을 관측하면 삼각측량법을 이용하여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를 알아낼 수 있다. 이 기회를 놓치면 한 세기가 지나야 다시 일어나는 일이기에 놓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이벤트였다. 당시 유럽의 과학자들은 관측을 위해 전 세계 100여 곳으로 흩어졌다. 프랑스 과학자 쟝샤프는 썰매를 타고 악전고투하며 시베리아로 갔다. 하지만 그가 가진 관측 장비가 불길하다고 생각한 원주민들에게 공격을 당해 목숨만 간신히 건져 돌아올 수 있었다.

1761년 기욤 르 장티는 인도로 가고 있었는데, 여행에 차질이 생겨 관측 당일 바다 위에 있게 된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는 측정이 불가능했지만 르장티는 포기하지 않고 8년간 인도에 머물며 1769년의 두 번째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금성이 태양을 통과하는 몇 시간 동안 구름이 금성을 가려 측정에 실패한다. 황망히 귀국하던 그의 배는 난파되고 구사일생으로 목숨만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가족들은 그를 사망신고하고 재산을 다 나누어 가진 후였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이야기다. 백과사전에 한 줄 나오는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를 알아내기 위해 어떤 이들은 자기의 모든 것을 걸었던 것이다. 태양은 당시 사람들이 생각한 우주의 중심이다. 지구로부터 우주 중심까지의 거리를 잰다. 얼마나 멋진 생각인가? 서두에서 이야기한 어린 시절의 호기심과 재미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뒷이야기가 궁금하실 분을 위해 덧붙이자면, 영국의 쿡 선장이 금성의 관측에 성공한다. 많은 탐사대가 실패했지만, 성공한 자료들을 모아 결국 과학자들은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가 1억 5천만km 정도 된다는 것을 알아낸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의 저자 빌 브라이슨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그의 책을 손에 쥐면 놓기가 쉽지 않다.

▲ 세상은 텅 비어 있다. 태양을 중심으로 반경 1,600km 내에는 행성 몇 개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출처=나사제트추진연구소)

이 가을,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모두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간다. 하지만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번 쳐다보자. 그냥 파란 하늘이 보일 뿐이겠지만, 바로 그 뒤에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광활한 공간이 펼쳐져 있다. 눈이 부셔 쳐다볼 수조차 없는 태양은 사실 8분 전의 모습이다. 태양에서 지구까지 빛이 오는 데 8분이 걸리기 때문이다. 태양에서는 끊임없이 수소 폭탄이 터지고 있다.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것은 태양에서 수소핵융합 반응으로 만들어진 빛이 책표면에서 산란해 당신 눈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당신 눈에 들어간 빛은 망막의 간상세포에 있는 로돕신 분자를 레티날과 옵신으로 분해한다. 당신은 이것을 본다고 표현한다. 이 세상은 과학 그 자체다.

필자는 부산대에서 지난 2년 동안 ‘시네마 사이언스’라는 교양과목을 개설했다. 영화를 빙자하여 사실은 하드코어 과학을 이야기하는 영악한 과목이다. 필자가 워낙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강의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는데, 평가가 문제였다. 고심 끝에 내린 결과, 기말고사 대신 <원더풀사이언스>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학생들이 읽고 이에 대해 필기시험을 보기로 했다.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시험에 내지 않아 불만이라는 사람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강의평가를 받아보면 학생들이 이 두 권의 책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가을 두 권의 책과 함께 자연과 우주에 대한 호기심에 충만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면 어떨까?

 

김상욱(물리교육) 교수
KAIST 물리학과 이학박사
주요연구분야 : 양자과학, 중시계물리

 

 
 

<과학 콘서트> 정재승 저/2011/어크로스
한국 과학출판계의 전설이다. 아직도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시간을 내어 꼭 봐야 한다.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최고 수준의 책이다. 복잡계 이론의 관점으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젊은 과학자의 열정이 느껴진다. 과학 글쓰기의 모범이기도 하다.

<사라진 스푼> 샘 킨 저/2011/해나무
화학 하면 주기율표가 떠오르지만, 많은 사람에게 이건 그냥 외우는 것으로 생각된다. 박물관이 아니라 주기율표가 살아있다! 원자들에 얽힌 온갖 재미있는 이야기를 모아 놓은 것이다. 세상 만물은 원자로 되어 있으니 모든 과학분야의 이해에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저/2010/을유문화사
이 책을 읽지 않고 사회를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책 제목 '이기적 유전자'는 이미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됐다. 생명체 모두는 사실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 위한 매개체에 불과한 것. 이것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는지 알고 나면 까무러칠거다.

<우주의 구조> 브라이언 그린 저/2005/승산
<엘러건트 유니버스>로 유명한 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의 후속작이다. 우주의 기원, 시간과 공간의 의미에 대해 최신 물리학 이론을 총동원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단언컨대, 이런 주제를, 이런 깊이로, 이 정도로, 쉽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이 우주에 브라이언 그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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