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에 SNS는 수많은 사람들의 애증의 대상이다. SNS에서는 연예인이나 샐럽 등 인플루언서의 삶을 어디에서보다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자기의 삶도 아름답게 전시할 수 있다. 나아가 많은 팔로워를 보유하면 실제 인생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소소한 홍보 영업을 할 수도 있고, 운이 좋다면 한 업계의 스타가 될 수도 있다. 그 밖에도 다양한 여행지나 맛집, 상품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만 본다면, SNS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SNS가 주는 불행감이나 우울감 또한 적지 않다. SNS에 전시된 타인의 삶은 모두 행복하고 아름다워 보이기만 한다. 온갖 복잡한 고민이나 어려움들로 뒤엉켜 있는 내 삶과 비교했을 때, 전시된 타인의 삶은 어딘지 완벽해보인다. 한 때 행복지수에서 세계 1위를 기록했던 부탄 같은 국가의 행복지수가 최근 추락한 이유가 SNS 때문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코로나 시대 SNS를 자주 접하는 환경이 마련되다 보니, 코로나블루가 더 심화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도 SNS는 우리를 매일 비교의 현장에 데려다 놓는다. 우리가 가장 우울할 때는, SNS 속 타인의 삶은 너무 빛나는 것 같은 데 반해 내 삶은 너무 누추하게 느껴질 때다. 나도 타인들처럼 그들이 누리고 있는 핫플레이스, 호캉스, 언박싱을 곧장 경험해야만 할 것 같다. 그런 우울감과 조바심에도 우리는 SNS를 완전히 놓을 수 없다.

그 이유 중 하나는 SNS가 주는 연결감 때문일 것이다. 우리 인간은 타인과 연결을 갈망하도록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보호자와의 애착, 즉 연결은 모든 사람이 겪는 가장 중요한 성장 과정이다. 또한 어린이집에 갈 때부터 회사에 취업해서까지 우리는 단체활동을 하는 집단주의 생물이다. 우리가 쓰는 언어만 하더라도, 타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진 발명품이다. 우리가 집 안에서 홀로 고독하게 글을 쓸 때도, 우리는 타인들과 소통하기 위한 언어를 쓴다.

또 하나는 타인들이 주는 지식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삶에 대한 접속을 끊고 홀로만 있으면, 우리는 더 좋은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 수 없다. 내가 살아온 삶밖에 모르고, 내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에만 갇혀 있게 된다. SNS 속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들은 내게 다른 삶또는 다음 삶으로 나아갈 힌트를 준다. 때론 용기도 준다. 혹은 사소하더라도, 이번 주말 내가 얻을 수 있는 행복의 방식에 대해 배우기도 한다. 집에만 있지 말고 어느 경치 좋은 곳으로 나설 의지를 심어준다.

그렇기에 SNS 또는 타인의 삶을 완전히 끊는다는 게 마냥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무엇이든 그것이 내 삶에 보탬이 되도록 활용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무엇이든 한 시대에 대단히 성행하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도 하다. 동시에 모든 유행하는 것들은 그 속에 독을 품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시대에 SNS를 대하는 적절한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독이 되지 않도록 활용하는 것이다. 때론 약삭 빠르게, 얻을 건 얻고, 무언가 잃을 것 같을 때는 눈을 딱 감는 방식으로 자기를 위한 SNS 활용법이 필요한 시대다.

정지우(‘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저자) 문화평론가·변호사
정지우(‘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저자) 문화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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