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조금 돌려 생각해보면 1년 전만큼 절망스러웠던 시기가 있었나 싶다. 20살 남짓한 인생에서 나락으로 떨어졌던 순간. 자존감은 눈꼽만큼도 존재하지 않으며 가장 절친한 친구에게도 옹졸한 마음을 먹던, 누구에게나 상처를 받고 누구에게나 상처를 주던 시기. 그렇다. 모든 이에게는 쥐꼬리만큼의 애(愛)와 대부분의 증(憎), 그리고 어렴풋한 그리움으로 끝맺어지는 고3이라는 시기가 있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간의 훈련 끝에 우리는 효율적으로 영어 단어를 외우고 시와 소설을 외우는 법을 배웠다. 수학문제를 풀면서 사고하는 법이 아닌 계산기가 되는 법을, 다른 사람과 같이 나아가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가는 법을 배웠다. 이 모든 게 극대화되던 시기가 고3이었다. 우리는 한없이 영악해지기도, 순진해지기도 해서 남들보다 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꼼수도 부려보고 그저 좋은 대학에 가면 그게 성공이라 철석같이 믿었다. 그렇게 84%의 아이들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대학생이 되기를 강요받으며 대학으로 갔다. 입학한 지 반년이 지난 지금 나는 대학과 대학생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본다.

대학을 간 이후로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들.“ 너는 나중에 졸업하고 나서 뭐 할거야?”, “ 전공 살려서 할 수 있는 건 있니?”, “너네 과 취업은 잘 된대?” 사람들은 자꾸 나의 학문이 직업적으로 효용이 있는지 묻는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늘 한 가지 의문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대학이란 무엇일까? 내게 대학은 더 큰 학문을 배우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삶의 기준을 세우고 사회를 미리 경험해보는, 정말 인생 공부를하는 곳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대학이란 그저 더 좋은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거쳐 가는 일종의 직업 훈련소인 것 같다. 물론 자기가 앞으로 선택할 직업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있다. 직업은‘ 앞으로의 삶’에 대한 성찰 중 하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어떠한 직업을 희망할 때, 그것의 기준이 너무 좁다는 것이다. 요즈음의 인기 직종을 보면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돈을 단숨에 많이 벌 수 있든가, 또는 고용 안정성이 보장된다든가.

인간은 단순히 물질적 욕망에 묶이는 삶을 원하지 않는다. 좀 더 나은, 정신적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더 많은 행복을 느끼려는 과정에서 자기의 삶에 대해 성찰해보는 자세가 더욱 필요한 것이다. 삶에 대한 성찰과 반성은 곧 자신이 만들어온 족적과 미래 대한 물음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대학에서 진정한‘ 대학’을 함으로서 이를 알아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우리가 12년 동안 준비해왔던 시간이 단순히 취업을 위한‘ 소학’을 배울 기회를 얻기 위해 투자한 시간이 아니라 믿는다. 자고로 청춘이라면 가슴에 스펙 대신 꿈 하나쯤은 키워야한다. 각종 자격증, 공무원 수험서적에 짓눌려 지내기보다는 문학과 역사, 사상들을 다룬 책에 파묻혀 그들과 소통해야한다. 알 수 없는 미래를 두려워하며 움츠려 있을 필요는 없다.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 올지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선택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유명 그룹의 노래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지금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기”이다. 실수나 실패에 대한 망설임을 넘어, 우리만의 패기와 상큼함(?)을 무기로 이제는‘ 진정한 대학’을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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