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간 한국에서 자살률이 가파르게 증가했다. 10년 단위로 두 배 이상씩 증가하여, 2012년 한 해에 1만 5천 명 넘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는 인구 10만 명 중 33.6명에 해당하는 자살률이다. 그 결과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8년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처음 시작한 1962년에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79달러, 실업률 25%였던 최빈국이었다. 이는 당시 수단이나 가나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아시아에서는 필리핀이나 버마가 한국에 앞서 있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세계 11대 무역 대국이 되었고, IT와 자동차 산업 등에서 세계적인 강국이 되었다. 이외에도 수 많은 지표를 통해 한국이 경제면에서 이룬 눈부신 발전을 확인할 수 있다. 학력 면에서도 OECD가 실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나 국제교육성취평가협회(IAEEA)가 주최하는 읽기능력평가(PIRLS)와 수학과학성취도평가(TIMSS)에서 모두 1~2위를 차지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지난 한 세대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여 이룬 업적과 성과가 이처럼 눈부시다면 당연히 성취감이 높아야 할 것인데, 어찌하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가? 상식으로 볼 때 자살은 어떤 의미에서든 좌절감과 관련이 높다. 한국이 엄청난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지만 좌절하는 사람도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실패인가? 성과지상주의 사회에서는 그렇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자살률을 볼 때 한국이 그런 사회가 된 것 같다.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던 것은 미래에 ‘출세’를 하고 잘 살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열심히 공부하지만 한국 학생들은 공부하는 즐거움을 모른다. 공부는 암기 능력과 인내심으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결과 한국식 공부는 시험에는 강할 수 있어도 공부를 즐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사회에 진출한 후에는 더 크게 출세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한다. 성공을 위해 가정과 건강까지 희생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인생관이 우리를 지배해왔다. 그러한 성과지상주의가 우리 인생에서 즐거움을 빼앗았다.

목표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좌절하지 않을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노력하는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인생에서 목표를 돈, 권력, 명예 등에 두지 않을 수 있는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 소양이다. 그런데 정부와 대학 본부는 학과를 소속 교수 논문 편수와 졸업생 취업률로 평가하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에 팽배한 지표 중심 성과주의 문화가 대학에도 투영된 결과이다. 개인과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가치관 형성과 인문학적 성찰은 대학에 설 자리가 없다. 이런 풍토에서 학생은 공부를, 교수는 연구를 즐기지 못한다. 이렇게 해서 성과 지표는 올릴 수 있을지 모르나, 삶에 행복을 주는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성과지상주의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으면 자살률 하락도 진정한 대학 모습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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