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현준(부산외대신문사 대학부장)


대학교 교정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있다. 가까운 부산외국어대학에서는 아무런 의견 수렴 없이 러시아·인도통상학부 통폐합이 결정됐다. 신규 학생 충원이 부족해 학과 유지가 어렵다는 이유였다. 취업 경쟁이 심해지면서 대학이 ‘회사원 양성소’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또한 서울권의 여러 대학들은 몇 년 전 야심 차게 내놓았던 자유전공학부를 점점 폐지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해당 학과를 다니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새하얗게 빛나던 벚꽃 아래 시위피켓이 일렁였다. 벚꽃나무 아래 피크닉 돗자리 대신 농성 텐트가 쳐졌고, 벚꽃잎보다 새하얀 전단지가 교정 바닥을 뒤덮었다. 철 지난 이야기지만 이것이 4월 우암동 캠퍼스의 봄이었다. 어느 봄날에 봄바람 대신 ‘구조조정’이란 칼바람이 부산외대에 불어닥친 것이다.

한동안 캠퍼스는 ‘러시아·인도통상학부(이하 러·인통상학) 통폐합’에 진통을 겪었다. 러·인통상학 학생들은 수업과 중간고사를 뒤로한 채 교내 본관에서 농성을 벌이며 학교 측과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시위피켓 앞을 지나가는 학우들은 냉담하기만 했고, 학교 측이 말하는 ‘민주적 대화’마저 거의 ‘협상’을 빙자한 ‘협박’의 자리에 가까웠다. 하루 종일 ‘통폐합 철회’를 외쳤지만 학교 측은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다는 일방적인 통보로만 그들의 항의에 일관했다. 결국 러·인통상학 학생들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일방적인 통폐합 반대’가 쓰인 시위피켓을 들고 소리치기를 포기했다. 근 한 달간, 벚꽃이 다 떨어진 후 파란 싹이 고개를 내밀었을 무렵이었다. 끝내 그들은 왜 통폐합 결정을 통보받아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문제는 이것이다. 어째서 학교 측은 구조조정으로 인한 ‘통폐합’ 문제를 왜 학생에게 먼저 허락받지 않았는가.

진부한 주장이겠지만 학교의 주인은 누가 뭐라고 해도 학생이다. 이것 또한 매 연설마다 학교에서 지겹다시피 언급하던 말이기도 하다. 학생들에게 등록금이라는 자본을 취하고 올바른 교육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대학의 역할이다. 그래서 학교라는 교육기관이 이익창출보다 철학과 윤리가 먼저여야 하는 이유다. 특히 우리대학 건학이념은 ‘민주이념’을 바탕으로 실천적 도덕성과 민주시민정신 함양이라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기만 하다.

그러나 학생들과 대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학과통폐합을 진행한 학교는 과연 민주적이었으며 도덕적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토록 목메는 ‘경쟁력’이란 이유 아래 학생들의 권리는 얼마나 짓밟혔는가, 이에 학교는 얼마나 떳떳할 수 있는가?

비단 러·인통상학 통폐합 하나만으로 대학의 부도덕성을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복지학과와 사회체육학과의 통폐합, 법학과와 경찰학부의 통합, 순식간에 사라진 정보수리학과 등 통폐합의 진통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학교는 또다시 통폐합을 강행한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변모할 필요가 있다고는 하지만 하나둘씩 학생들이 선택한 학부가 사라지는 현실을 보며 ‘토사구팽(兎死狗烹)’이 떠오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수도권 대학들 역시 취업 경쟁력이 떨어지는 역사학과나 국어국문학과 같은 비인기학과에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대 큰 논란을 일으켰다. 경쟁력을 위해서라면 이 땅을 지켜온 철학과 이념은 내팽개치는 게 과연 윤리를 가르치는 ‘학(學)교(校)’라 말할 수있는가.

현재 고등학생 수의 급감과 그로 인해 대학생들이 현저히 줄어드는 상황 속에 이 땅의 대학들은 구조조정을 통해 규모를 축소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가혹한 사정은 잘 안다. 그러나 학교의 본질적인 책임마저 벗어 던지고 경쟁력만 운운한다면 앞으로 학생들은 학교에서 경쟁 이외에 뭘 배워야 하는지 나는 대한민국의 모든 학교에 질문을 던진다.

‘학생권리침해’를 지적하던 러·인통상학 학생들의 시위 앞에 던지던 우암동 교정의 냉소. 이곳 우암동엔 학교도, 학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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