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쓰랴> 중 ‘비망록

 

몇 년 전만 해도 구정문 일대에는 오래된 주택들이 즐비해 있었다. 담과 담의 경계가 모호하고, 하나의 출입문으로 들어가면 여러 집들이 나오는, 엉켜버린 실타래 같은 집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곳은 주로 신축 원룸이나 고급 하숙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가난한 자취생들의 주거지였다.

필자도 그 근처를 서성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집에서 통학을 해서 따로 자취를 한 것은 아니지만, 친했던 선배나 동기, 후배들이 그 일대에 살고 있었다. 학교 앞 주점에서 늦도록 술을 마시고도 집에 가기가 아쉬워, 캔 맥주와 마른안주를 사 들고 동기의 자취방으로 향하곤 했었다. 이야기의 주제는 연애 문제부터 가족 관계, 친구들의 문제, 취업과 진로에 대한 걱정까지 한정돼 있으면서도 다양했다. 그러다 가끔 정치, 경제 이야기나 문학이니 철학, 예술이니 하는 다소 무겁지만 잘 알지 못하는 주제에 대해서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 골목의 정식명이 ‘청춘1로’라는 것은 대학교 4학년이 돼서야 알았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점심을 먹고 올라오던 날, 고개를 들어보니 전봇대의 푯말이 흔들리고 있었고 거기엔 ‘청춘1로’라는 지명이 적혀 있었다. 그 순간의 낯설고 신이한 기분이란. 갑자기 다른 곳에 놓인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 반갑고 안심이 되기도 하는 복잡한 감정. 다시 보니 그 길 옆으로  ‘청춘2로’, ‘청춘3로’가 자신을 봐 달라는 듯 기다리고 있었다.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 깨어보니 스물네 살이었다. 神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조리며 숨어 있어도 끝내 찾아주려 노력하지 않는 거만한 술래여서”

골목길의 노래가 영원할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스물네 살이 됐고, 대학교 졸업반이 돼 있었다. 같이 이야기를 하던 친구들은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거나, 휴학을 한 상태였다. 필자 역시 친구들처럼 무언가 준비를 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몰라서 답답하기만 했었다. 모든 것이 얼굴을 숨긴‘ 술래’처럼 보이지 않던 날들이었다.

“끝내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네 살엔 좀 더 행복해져도 괜찮았으려만”

그 후로 다시 시간이 흘렀다. 청춘의 길은 어느 순간 사라졌고, 그곳에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답답하다 여겼던 청춘의 길은 어디에 있을까, 같이 노래 부르던 친구들과 골목길의 가로등은 어디로 떠났을까? 얼굴을 보여주지 않던 술래는 끝내 본인을 밝히지 않고 떠나버렸다. 그 길들이 사라지자 마치 대학 시절이 송두리째 뽑힌 것만 같아 마음이 아렸다.

그러다 다시 드는 생각. ‘길’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실체가 아니라 마음 속의 표상으로도 존재한다는 것. 그렇기에 사라져버린 청춘의 길을 안타까워만 할 필요가 없다는 것.

“깨어나 스물 다섯이면 쓰다 만 편지인들 다시 못쓰랴.”

길이 사라졌으면 어쩌랴, 친구들이 떠났으면 어쩌랴. 청춘의 노래를, 편지를,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더 쓰면 되지 않겠는가. 이번에는 “실날처럼 가볍게”, “아무것에도 무게 지우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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