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는 창밖의 하늘은 참 맑다. 청명한 빛깔만큼이나 사람의 심성도 곱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것일까? 급변하는 세태와 인심을 보면서 알록달록 어우러지는 단풍이 부러워진다. 우리는 이 마음으로 올해 응모작을 마주하였다. 세상에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의견과 감정이 존재하고 그들은 그들대로 의미가 있다고 믿는 터라 시를 들여다보는 손길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작품 하나하나에 응모자들의 마음 하나하나가 들어있을 것이기에! 올해 응모작은 모두 7명에 35편이었다. 작년보다는 응모작이 늘었다는 점은 다소 고무적이었다. 시대가 어려움을 반영한 것일까? 삶의 속도가 다급해져 호흡이 짧아진 탓일까? 그래도 시로 삶을 위로받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으리라.
  올해 응모작은 크게 기억과 회상에 의거한 ‘자위적(自慰的) 독백’과 자신의 언어와 문자에 대해 직시하고 성찰하고자 하는 ‘메타시’가 주류를 이루었다. 군중(群衆)에 묻힌 자아를 들추어 확인하고 세상과의 소통 내용(시 혹은 말)에 대하여 고민하는 것은, 개체의 존재를 잃지 않고 세상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욕구의 발현이다. 사실 내가 없는 남이 있던가? 그런 점에서 그리 탓할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표현이 정제되지 않고 감상적이라면 곤란하다. 그 감동은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른바 ‘시적 여운’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번 응모작 가운데 <흰 당나귀>와 <건강검진 안내서를 읽는 밤>을 가작으로 선정하였다. <흰 당나귀>는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창작 모티프를 취하여, 창작의 고적(孤寂)과 고통을 담담히 써 내리고 있다. 더러 모작이란 혐의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원작과 거리를 두면서 자신의 작시 경험을 ‘농장’에 비유하면서 시에 대한 갈망을 표현한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경계를 오가면서도 자신의 정서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건강검진 안내서를 읽는 밤>은 어머니의 건강검진서를 몰래 뜯어보면서 세파를 겪어온 어머니의 삶을 반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숲’ ‘머리’ ‘실뭉치’ 등으로 재현되었던 ‘길(인생)’의 이미지는 흡사 한시의 ‘행로난(行路難)’을 떠올리게 한다. 이 시는 비록 감상적인 부분은 있지만 비유의 일관성을 통해 인생의 형상화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늘 이맘때면 우리는 설레임과 아쉬움을 함께 맛본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새롭게 창작의 길에 들어선 두 분의 앞길을 축원하며, 아울러 비록 선정되지는 않았지만 창작의 고통을 함께하였던 다른 응모작들에게도 격려를 보내며 더 나은 정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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