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에는 추억의 장소라 할 만한 공간이 부족하다. 캠퍼스 내에는 빼곡하게 단과대학과 각종 연구소 및 부대시설이 들어서 있지만 시공간이 한데 응집된 ‘추억의 장소’가 딱히 없다. 고학번 선배들은 시계탑과 넉넉한터에서의 추억을 이야기하곤 하지만 이제 그 공간들은 모두 추억 속에 자리하고 있다. 대형쇼핑몰과 지하주차장이 추억의 장소를 빼앗긴 지금에는 우리학교에서 기억과 공간을 함께 아우르는 의미를 찾기 힘들다.
 
공간은 물리적 자리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심리적 자리 즉, 기억의 저장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공간을 만드는 것과 없애는 것은 모두 기억과 관계될 수밖에 없어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우리학교는 공간과 기억의 가치에 대한 깊은 고민은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억을 소홀히 여기기는 부산시도 마찬가지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2007년부터 부산시는 본격적으로 창조도시 만들기에 나섰고 2010년부터는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면서 공간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노력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 부산진역을 둘러싼 한국철도시설공단의 결정은 창조도시, 도시재생이라는 말을 무색케 한다. 지난달 26일 한국철도시설공단은 부산진역사 남쪽에 있는 주차장 및 무료급식소 자리 2,600㎡에 민자개발사업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후 지난 3일 지하 4층, 지상 20층의 업무시설 및 오피스텔 2개 동을 지을 예정이라는 상세계획이 발표됐다. 이러한 계획에 의하면 부산진역 일대는 큰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이다.
 
도심 속에 자리한 역은 운송수단의 공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지역 상권의 형성 및 도시민의 생활 습관 등을 형성시키고 도시의 모든 기억을 간직하는 매우 큰 저장소다. 2012년 부산 비엔날레가 한창인 부산진역은 각종 공공미술의 공간으로 활용돼 왔다. 뿐만 아니라 부산진역은 1905년 영업을 시작한 이래로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상당한 양의 기억을 저장하고 있다. 비둘기호 승객들은 부산진역을 이용했고 역전에선 명물소싸움이 열리기도 했다. 1952년에는 독립운동가 나인협의 장례식도 부산진역 앞에서 진행됐다. 부산진역은 사람들의 생활의 배경이면서 축제와 이별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부산진역 일대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은 결국 개발의 논리를 가장 우선시함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여전히 경제적 논리에 휘둘리고 있는 부산시의 모습에서 우리는 공간의 참의미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모호한 개념으로 점철된 말만 번지르르한 사업을 진행하기 전에 창조도시, 도시재생이 무엇이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그리고 그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고민의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창조와 재생은 ‘기억’이 없으면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부산시민들의 기억의 저장소인 부산진역 일대가 개발로 사라져버린다면 그 기억도 갈 곳을 잃게 된다. 창조도시를 만들겠다던, 도시재생에 힘쓰겠다던 이들은 이때 과연 창조와 재생의 의미에 대해 답할 수 있을까?
 
최근 들어 지하주차장과 쇼핑몰로 번잡해진 학교 정문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고학번 선배들에 대한 부러움이 더욱 커진다. 부산진역은 추억을 쌓는 공간으로 창조, 재생돼 방대한 기억의 저장소로 보존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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