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을 그린다. 민중의 주장을 그린다. 민중의 삶을 그린다. 이것은 바로 민중미술이다. 민중미술은 예술지상주의에 빠져있던 1980년대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미술사조다. 민중미술이 추구해오던 현실참여의 뜻이 희미해지고 작가들이 사라져가는 추세지만 민중미술은 주목해볼 가치가 있는 장르다.
 
민중미술의 시작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술계는 예술지상주의 속에서 사회와 동떨어진 채 창작활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1970년대의 유신, 1979년의 부마항쟁을 겪으며 미술계는 그들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젊은 작가들의 동인모임 ‘현실과 발언’이다. ‘현실과 발언’의 활동은 곧바로 정부에게 탄압됐다. 대다수의 작품은 민주화, 계급해방 등 당시 운동권의 주장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민족미술인 총연합 배인석 이사는 “1980~1990년대 미술계를 휩쓸었던 민중 미술은 민중미술협의회와 같은 조직적인 형태로도 발전해 전개됐다”고 말했다.
 
민주화 운동에 민중미술 작품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민주공원 정영배 팀장은 “민중미술 작품들은 대개 시위현장에서 구호를 외치는데 쓰였다”며 “때문에 작품 대부분이 압류, 소실됐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적다”고 밝혔다. 또한 정부의 탄압으로 대규모시위를 하기 힘들었던 시절에 민중미술은 시민들에게 현실을 알리기 위해 쓰였다. 이런 특징은 민중미술 작품 중 판화, 걸개그림이 많은 이유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을 알리기 위해 눈에 잘 띄거나 대량 생산이 가능한 기법을 썼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실참여라는 초기의 목적을 지닌 민중미술은 약화됐다. 세계화의 진행, 동구권과 소련의 몰락, 6월 항쟁 이후 민주주의가 형식적으로나마 확립된 것 등 사회 분위기가 변화한 것이 원인이다. 이어 사회 운동이 점차 추진력을 잃었고 민중미술 역시 차츰 사라져 가고 있다. 서정민갑 문화평론가는 “폭발적, 비타협적, 계급적으로 일어났던 사회 운동의 방향이 바뀌었다”며 “시위가 문화제 형식으로 변화하고 향유층이었던 운동권이 약화된 것도 문화 속에 ‘민중’이 사라지는 원인이다”고 말했다.
 
부산 역시 예외는 아니다. 민중미술과 관련된 운동은 거의 이어지지 않고 있다. 부산 민족미술인협의회의 경우 복합적인 문제로 인해 활동을 쉬고 있다. 이민한(미술) 교수는 “민중의 삶보다 정치적 역할 수행에 치중한 결과 한계를 맞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민중미술 작가들은 조직적으로 보다는 개별적으로 각자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판화, 걸개작품을 벗어나 영상물을 사용하는 등 영역을 넓히고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비판적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민중미술은 아직 죽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민주화라는 최대 과제는 해결됐지만 한국 사회 내부에는 여전히 많은 문제가 산재해있기 때문이다. 최태만(국민대 미술) 교수는 “21세기도 민중미술이 수행할 역할이 있다”며 “미술은 정치와 무관하지 않으며 예술가들의 발언은 계속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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